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우리 주변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건축이라 지칭될 만한 건물들은 많지 않다. 물론 당연히 반론도 있을 수 있고, 원인에 대한 견해도 여러 가지로 갈라질 수 있겠으나 적어도 본질에 충실한 건축이 건축의 격을 올바르게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본질`이란 말의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등으로 정의 내려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건축의 본질은 무엇일까? 승효상 건축가는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이라고 했다. 그런데 건축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는 스스로는 그 본질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공간을 싸고 표현하는 형태와 소재, 구법 등을 통해서 비로소 그 본질의 성정을 드러내게 된다. 또한 이러한 구성 요소들 역시 나름의 본질을 갖고 있다. 건축가 루이스 칸에 따르면 건축가는 항상 스스로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며, 디자인을 펼치기 전 사물의 존재 의지를 사유해야 한다고 김낙중 교수와 정태용 교수는 그들의 저서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에서 전하고 있다. 여기서 건축의 격이 가늠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공간에 대해 일반론적으로 잠시 생각해보자. 공간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용어인데, 중요한 것은 모든 공간은 나름의 고유한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거공간은 말 그대로 주거를 위한 공간이고, 상업공간은 말 그대로 상업을 위한 공간이며, 개인 공간 역시 말 그대로 개인의 영역 확보를 위한 공간이다. 격이 있는 건축이라면 모름지기 공간의 원래 목적과 기능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바를 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경제와 정치 등 건축 외적 요인의 논리에 따라 공간의 축조 목적이 결과적으로 변질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이층 침대 구조인데 아래층에는 매트리스 대신 욕조가 있는 극도의 공간 절약형 원룸, 협소한 발코니에 주방가구를 놓고 유리문을 번갈아 열어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공간 분리형이라는 원룸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대표 주거 유형이 된 아파트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논리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또한 준공 이후 베란다를 실내공간화하고 경사지붕 속 공간에 다락방을 축조하거나, 주차장을 영업공간으로 변경하는 등의 불법 건축 행위들은 각 공간의 원래 목적 및 기능을 부정하는 범죄 행위들이다. 공공건축물에 있어서는 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공간의 원래 목적과 기능을 훼손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과시적 외관의 추구에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조류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소위 `스펙터클(spectacle)의 건축`, `모뉴먼트(monument)의 건축`으로 설명되는 공공 건축물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의 경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그 목적 공간의 본질에 정직한 지는 의문이다.

형태와 소재, 구법 등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겠지만 특히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공간의 원래 목적과 기능에 대한 숙고 없이, 고전적 모티브의 형태를 오마쥬(hommage) 한다면서 양식, 구법, 소재 등에서는 아무런 원칙도 없이 제대로 규범을 지키지 못하거나, 시공 수준, 기후 환경, 문화적 맥락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근 유행하는 건축 스타일을 복제하는 시도들은 정정되어야 한다.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 문루를 왜 목조로 다시 또 복원하여야 했는지, 르네상스 스타일 같은 서양 클래식 건축 스타일을 모방하여 장식된 예식장 건물들이 왜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했는지, 그동안 현대성과 첨단의 상징으로 선호되어오고 있는 유리 커튼월 건물들이 최근에는 왜 이전과는 다르게 절대적으로 환영되지는 않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건축의 본질은 정직이다. 본질에 대한 추구는 존중되어야 하며, 정직한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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