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우리 반 특색 사업은 책 쓰기다. 아이들에게 책 쓰기 활동을 소개하면 대개 `책을 쓴다`라는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책을 쓴다`라는 말은 꽤 낯선 조합의 문장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이란 `읽는 것`이라 생각해 왔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책 쓰기의 목표는 `소설 쓰기`다. 일기나 간단한 글감으로 쓴 글을 모아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설을 써야 한다. 이런 장대한 꿈을 처음엔 살짝 감춘다. 사자가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듯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글과 친해질 때까지, 상상력을 조금씩 내보일 때까지 낮은 포복 자세로 살금살금 다가선다. 아이들 마음속의 빗장이 풀리고 글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질 때쯤 드디어 나는 소설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얘들아, 우리가 이제 소설을 쓰려고 하거든. 소설이란 말이야…. 구성요소라는 건 말이지…. 주제라는 게 또 뭐냐면…."

아이들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른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곧잘 믿는 아이들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들의 상상력에 꼭 알아야 할 소설 작법의 틀을 곁들이면 어엿한 소설 한 편이 탄생한다.

그렇게 소설을 완성한 학생들은 자신에게 칭찬이 인색했던 학생조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고 인정한다. 나와 나의 거리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백하건대 우리 반에도 소설 쓰기를 꺼리던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의 특징은 매사를 몹시 귀찮아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해져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확고하다. 나 역시 이 학생에게 쓰기를 권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은 아닌지 머릿속으로 수차례 질문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의 동료 교사가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선생님, 본인에게 직접 다시 한 번 물어보세요. 아이들 앞에서가 아니라 따로, 일대일로요.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요."

아이의 의사를 재차 확인하자 갈등과 고민의 표정 끝에 결국 `쓰겠다`는 답을 내놨다. 마음이 바뀔까 싶은 생각에 말 나온 김에 오늘 학교에서 쓰고 집에 가라고 권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의 질문에 다른 답변을 미처 생각지 못했는지, 아니면 이런 날이 오기를 내심 바랐는지 `네`하고 순순히 교실에 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말하는 개`. 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은 소설이었다. 나는 그의 천진난만한 글에 한껏 고무되었다. 그때, 아이의 질문은 나의 귀를 의심하게 하였다.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이것, 제가 쓴 글…. 내일 친구들한테 읽어 주시면 안 되나요?"

글쓰기는 힘이 있다. 나를 감추면서도 나를 드러낼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며, 나와 세계에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묘한 힘을 지녔다.

내가 다음날 그의 글을 반 아이들에게 읽어 주던 순간, 나와 마주친 그의 눈빛에서 자존감 가득한 미소를 보았다. 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