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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죽음과 소녀

2019-10-15기사 편집 2019-10-15 08: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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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상철 스펙트럼 대표
소녀가 말한다. "죽음의 그림자여,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죽음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저리 가세요. 저를 만지지 마세요." 죽음이 소녀에게 말한다. "내게 다정한 손길을 주렴. 아름답고 순진한 아가씨여, 나는 너의 친구란다. 네게 벌을 주려 온 것이 아니야.. 기운을 내렴. 나는 난폭하지 않단다. 내 팔에서 편히 잠들게 해줄게."

위 시는 독일의 서정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죽음과 소녀'라는 작품으로, 슈베르트가 스무 살이 되던 1817년에 작곡한 가곡의 가사이다. 그로부터 7년 뒤, 가곡 '죽음과 소녀'와 같은 제목으로 주제선율을 다시 가져와 1824년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완성한다.

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작곡하던 시기에 슈베르트는 큰 병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 작품을 작곡하던 배경에는 그의 친구이자 귀족 출신의 시인이었던 프란츠 폰 쇼버의 영향이 크다.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한채 약 156㎝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를 지닌 착하고 여린 슈베르트는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 쇼버와 어울리며 일반적이지 않은 경로로 여자를 만나 매독을 판정받고 1823년부터 병원 치료를 받는다. 항생제 치료로 머리카락은 빠지고 두통과 피부 발진, 염증으로 상태는 점차 악화만 되었다. 그리고 병에 시달리면서도 많은 작품들을 작곡하다가 1828년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매독에 대한 백신은 없었다. 매독의 원인은 슈베르트가 죽은지 90년여 년이 지나 1905년이 되어서야 독일의 세균학자 샤우딘과 호프만에 의해 매독의 병원균인 스피로헤타가 발견되었다. 1909년에는 파울 에를리히에 의해 매독 치료제가 개발됐다. 현재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으며 약 400년간 유럽에서만 100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했던 불치병이었다.

슈베르트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뿐이었다.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쓰고 난 직후에 친구 레오폴트 쿠펠바이저에게 보낸 편지에 당시의 슈베르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또 비참한 존재 같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빠진 건강과 완전한 절망에 빠져 모든 주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한 남자의 심정을 헤아려 보시오. 간직했던 모든 희망이 하나같이 다 무너져버리고 이제는 사랑과 우정으로도 위로받지 못하게 된 남자를 상상해 보시오. 매일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다시는 아침에 깨지 않기를 기도하오.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슬픔은 밤새 나와 같이 잠잤다가 다시 깨어 내 옆에 그대로 있소."

슈베르트의 삶의 자세는 베토벤과 대조적이다. 그가 가장 존경하고 숭배하다시피 했던 베토벤은 그의 운명교향곡처럼 자신의 운명에 맞서 투쟁하여 이를 극복하여 승리하는 신념이었지만, 슈베르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그저 견뎌냈다.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나 자신의 슬픔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직 슬픔에 의해서 태어난 것만이 세계를 즐겁게 해주는 것 같다."

이상철 스펙트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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