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보호연구본부장
김익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보호연구본부장
요즘 들어서 부쩍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이 점점 가슴에 와 닿는다. 이는 필자만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닐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초연결·초실감 등 온갖 최첨단 용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때 흑백으로 그려지는 어릴 적 아련했던 기억과 풋풋한 감성이 그리운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각박한 혁실이 그리운 `옛날`이 된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좋았던 옛날`로 기억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해 씁쓸함을 느낀다.

하지만 과거의 아날로그 세상을 그리워하는 가슴과는 다르게 오히려 우리의 몸은 이미 스마트한 환경에 적응해서 잘살고 있다. 스마트한 서비스를 한껏 누리고 있으며, 세상이 좀 더 스마트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스마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바로 `안전`이라 생각한다.

안전은 우리의 목숨, 재산과 직결돼 있다. 즉 우리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가장 중요한 `먹고 사는` 문제인 것이다. 최근 반인륜적 흉악범죄와 신종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과거의 아날로그식 치안시스템만으로 시민의 신변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시민을 보호하는 치안시스템이 더 스마트해 지지 않으면 범죄에 대적하기는커녕 만만한 상대로 전락할 지도 모르겠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형사들은 현장 CCTV 영상을 직접 찾아서 복사, 분석해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실제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도 골든타임을 놓쳐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일 이러한 경우에 AI 치안시스템이 자동으로 CCTV 영상을 고속, 분석해서 골든타임 내에 용의자의 시간대별 이동 경로를 알려줄 수 있다면 쉽게 범인을 잡을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범죄현장에 찍힌 희미한 CCTV 영상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용의자 차량 번호판을 `확대시켜 봐`라는 간단한 상사의 명령만으로 고화질로 복원해주는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편히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한 최상위 가치일지라도 절대 훼손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 바로 `개인의 사생활(프라이버시)`다. 언뜻 생각해보면 안전의 가치 중요성에 비해 가벼워 보일 수 있으나, 개인 프라이버시 보장은 국민이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 가치이자 존중의 표식이다. 물론 범죄 위험도와 급박성에 따라 어느 정도 침해 가능성은 있으나, 이것도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고 납득해서 스스로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상식 수준이어야 한다.

수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하늘의 그물` 이라는 뜻의 `텐왕 프로젝트`를 통해 13억 명의 얼굴을 3초 내에 인식하는 기술을 현장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를 확대해 중국 전 인민을 감시 통제하는 `쉐량 공정`을 출범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얼굴인식 시스템을 기반으로 범죄자들만 색출해 낸다고 하지만,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반기를 드는 모든 이들이 언제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프라이버시 보장 없이 통제와 감시의 방법으로 스마트한 기술을 휘두를 때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사회가 탄생하게 될 것은 자명한 듯하다.

다들 AI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가슴은 늘 아날로그적인 삶을 그리워하고 꿈꾼다. 하지만 안전만큼은 좀 더 세련되고 멋지게 바뀌었으면 한다. 이제 아날로그적인 치안시스템은 그만 잊고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모두가 `편히 먹고 잘 살기` 위한 기본은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스마트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날이 흉포해지고 지능화·은밀화되는 범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더 나아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AI 첨단치안시스템을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그 바탕에는 개인을 존중하는 프라이버시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스마트한 세상의 중심에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스마트한 안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익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보호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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