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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세계유산 '백제'로의 초대

2019-07-02기사 편집 2019-07-02 0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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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달력에 별다른 표시도 없는 이 날이 실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위대한 왕이 1500여 년간의 영면에서 잠을 깨고 우리 앞에 다가온 날인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바로 세기의 대발견이라 일컬어지는 무령왕릉이 발견된 날이 1971년 7월 8일이다.

이를 기념하여 문화재청 산하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 추진단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백제 역사와 문화를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하니, 바로 7월 8일부터 14일까지 공주·부여·익산 일원에서 열리는 '백제문화유산주간'이다.

백제하면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미적 감각의 정수인 금동대향로, 절반이 무너진 채로 오랜 세월을 견뎌오다 얼마 전 성공적으로 복원을 마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화공주와 서동요 같은 이야기와 함께, 7월 8일 오랜 역사 속에서 깨어난 무령왕릉은 우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있는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데 제격이다. 금제 뒤꽂이를 비롯하여 순수한 무게만도 무려 5kg에 이르는 너무나도 화려한 각종 금은제품들과 영롱한 색채를 띤 다양한 구슬들, 중국에서 보내온 도자기와 일본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목관 등등 백제문화의 진면목을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 특별실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남긴 백제지만 사실 그 역사의 뒷모습에 피비린내가 진동하였음을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475년 가을 어느 날, 장수왕이 보낸 군대에 의해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고구려 병사의 손에 비참하게 목을 베이자, 백제는 급히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한다. 477년 문주왕도 신하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고 13살의 어린 나이에 등극한 삼근왕도 2년 만에 의문사를 한 이후, 501년 동성왕을 살해한 백가의 반란까지 백제는 엄청난 풍파 속에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백가의 반란을 제압하고 벼랑 끝에 섰던 백제의 기틀을 다시 세운 이가 바로 무령왕이다. 세기의 대발견인 무령왕의 무덤임을 입증한 묘지석의 첫머리가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으로 시작되는 바, 영동대장군은 중국의 관작으로서 벽돌로 만든 중국계 무덤과 일본산 목관, 그리고 묘지석은 백제를 부흥시킨 무령왕의 탁월한 외교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질 자료인 셈이다.

이후, 무령왕의 아들인 성왕이 538년,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다시 수도를 옮긴다. 부여는 바로 지금의 세종시와 같은 계획도시였다. 7세기 전반 서동 설화로 유명한 백제 무왕은 익산을 또 하나의 이상적인 도시로서 가꾸기 시작했으니,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왕궁리유적, 쌍릉 등이 그 대표적인 흔적들이다. 이렇게 백제는 475년부터 660년까지 공주, 부여, 익산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하며 문화 발전의 전성기를 이뤄냈다.

백제문화유산주간은 국민 누구나 이러한 백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역사문화축제로서, 백제왕도의 각종 유물과 주요 유적지를 주제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행사와 강연, 교육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 백제 문화가 궁금한 국민들에게 즐거운 여름 축제로 다가설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 고고하고도 우아한 멋과 향을 풍기는 백제 역사·문화로의 시간여행에 초대받은 국민들이 이곳을 찾아 즐겁고 신나는 날들을 보내길 바란다.



성정용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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