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안·민생법안 외면 경제악화 노리나

지난 24일 결국 한국당 없이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정부 추경안 제출에 따른 국무총리의 시정연설도 한국당 없이 이뤄졌다. 이례적인 일이다.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이뤄낸 국회 정상화 합의를 한국당이 뒤집은 결과다. 한국당은 의총에서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 패스트트랙법안은 각 당의 안을 종합해 논의한 후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라는 문구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한국당에겐 3당 원내대표가 서명하고 국민 앞에 공표한 합의안을 걷어차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상식적인 이들에겐 납득키 어려운 일이다.

6월 임시국회가 지난 20일 문을 열었으나 여전히 반쪽이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정상화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등원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일부 상임위가 열리고 있지만 한국당 의원들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추경안 심사 여부도 미정이다. 황교안 대표는 여전히 장외로 떠돌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합의안 파기 이후 종래의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되레 국회를 열고 있는 민주당을 비롯해 다른 야당을 비난하고 있다. 여야 4당이 한국당을 뺀 채 국회 소집을 요구하고, 본회의를 열었을까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한국당이 강력히 요구하는 패스트트랙 철회는 정치공세차원에선 유효할지 몰라도 국회법 차원에서는 실현성이 없다. 그 자체로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이 문제가 많다면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심의과정에서 따지는 것이 순서다.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두 달 가까이 밖을 떠돌았지만 해결된 것이 있는가. 설사 여야 4당이 `야합`했다고 하더라도 무효화되지는 않는다. 의원숫자에서 밀리기 때문에 심의에 참여하기 어렵다면 그것도 의회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당이 국회를 떠난 사이 민생법안과 추경안 등 시급한 현안들은 실종됐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이 줄줄이 지연되면서 정부의 시스템 작동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도 65일이 지났다. 이미 집행됐어야 할 추경은 심사조차 착수하지 못했다. 미세먼지나 지진 산불 등 재난 대비도, 경기에 선제적 대응도 당연히 뒷전으로 밀렸다. 오죽하면 추경 집행을 막아 경제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한국당의 내년 총선 전략이란 지적까지 나오겠는가.

한국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는 대신 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엔 참석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또 북한 선박 삼척항 귀순 등과 관련한 일부 상임위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한국당의 이런 투트랙 전략은 속셈이 뻔하다. 대여 공세를 극대화하되 정부 여당의 현안은 외면함으로써 곤혹스럽게 하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입맛에만 맞는 음식만 골라먹겠다는 심보다.

한국당 합의안 파기와 국회 등원 거부는 국민의 여망을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당이 국회를 외면하면 할수록 민생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한국당이 줄기차게 외쳐대는 민생경제는 말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뒷받침되고 예산이 수반돼야 개선된다. 정책과 예산은 국회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형편없다면 국회서 논의할 일이지 밖에서 항복을 요구하는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한국당의 주장도 국회를 벗어나면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여야 4당은 당초 합의안을 기초로 본회의 등 향후 의사일정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지만 80일이 넘도록 의회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국회 밖에서 몽니를 부릴수록 여야 4당의 `한국당 패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미적거리면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당 내에서도 조건 없이 등원하자는 유화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당장 손에 쥘 것은 없더라도 크게 보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김시헌 서울지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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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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