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그 자체로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다. 그 이전의 미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미술가들은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서, 자신을 고용한 단체나 사람에게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서양에서는 실제로 교회나 귀족, 왕, 일부 부유한 상인들을 위해 그림을 제작했고, 이들은 후원자로서 미술가들의 생계를 책임져 줬다. 이는 그림을 수양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고, 오늘은 서양을 중심으로 미술이 어떠한 생각과 흐름을 통해 그 성격이 변해 왔는지를 말해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시작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플라톤(Plato, BC 427-347년)이다. 플라톤이 `미(美)`라는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여긴 최초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시대에 미술가들은 크게 대접을 받지 못 했다. 플라톤은 자신이 사는 세계가 전쟁과 질병, 잘못된 선택을 끊임없이 가져가는 것을 보고, 그 세계가 거짓된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는 저 너머 어딘가에 참된 세계가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 세계의 그림자, 즉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가짜를 또 다시 천위에 그림으로, 혹은 돌을 깎아 조각으로 모방하는 미술가들은, 참된 세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참된 세계를 향한 여정에 미술가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비슷한 시기의 유명한 화가인 제욱시스나 파라시우스가 아무리 포도와 커튼을 잘 그렸다고 해도, 이 미술품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년)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그는 스승과는 다르게 미술품이 단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 즉 참된 세계로 다리를 놔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미술이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본질을 고민하는 과정으로써 모방에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무튼, 그는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카타르시스(Catharsis:정화)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미술에 크기와 질서, 비례 같은 몇 가지 규범을 제시한다. 우리가 가끔 언급하는 `8등신` 같은 표현도 여기에서 기원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몇 백 년 후에 등장하는 플로티노스(Plotinus, BC 205-270년)는 예술작품이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미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으며, 그러므로 영혼이 정화로 가는 길의 한 단계가 된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몇 백 년을 거쳐 미술가에 대한 대접이 조금 나아진 것이다.

이주형 한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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