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30일, 서울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 안치된 일본 히로시마 피폭자 위패. 2019년 촬영. 세로 240cm* 가로 600cm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 안치된 일본 히로시마 피폭자 위패. 2019년 촬영. 세로 240cm* 가로 600cm
전쟁의 상흔은 민초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삶은 변화하는 게 아니라 망가진다. 파괴된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나라와 주변국에 역사적 상흔을 안겼다.

지배적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역사의 폭력성을 개인의 삶을 따라 진득하게 기록한 작가가 있다.

대전일보, 조선일보 사진 기자 출신 전재홍(59) 사진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8년 간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을 쥔 후 틀어진 개인의 역사를 직접 취재해 생생히 기록했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 조선인 피폭, 남경대학살, 위안부, 재일동포 등 역사의 생채기를 담으며 역사의 진실을 규명한다.

전 사진가의 이 작품들은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변화의 틈(Duration and Change)`에 초대돼 관람객과 만난다. 그는 특별전 섹션 3 다큐, 그 무게감(3·1절 100주년 기념)에 모두 25점의 작품을 내보인다. 또 개인부스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을 담은 대형 작품 3점 등 모두 28점을 선보인다.

전 사진가의 작품엔 `제국의 제국`을 꿈꿨던 일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주변국과 민초들의 삶을 처절하게 바꿔 놓았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이주, 강제노동, 2중징용, 세균전 731부대, 남경대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전 사진가는 사진이란 방부 매체를 이용해 `아리랑`을 쓰고 있다.

그의 근대화에 대한 기록 작업은 1990년대부터다.

충남 논산 강경에서 그는 눈에 들어온 있던 2층 일식 건물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나 한 달 후 가보니 건물이 사라졌다. 헐린 건물은 일제 강점기 경제 수탈의 근원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주재소였다.

일본의 한국 경제수탈의 전초기지였다. 그 때부터 그는 일제의 상흔을 담기 시작했다.

자료 수집부터 인터뷰, 취재까지 강경에 대한 자료 축적을 한 후 기록했다. 강경 기록을 완료한 그는 호남평야로 시선을 옮겼다. 수탈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일제의 쌀 수탈과 관련된 시설, 구조물을 일제 기록했다. 그는 그렇게 열강의 침탈 속 한국의 근대 모습을 담은 근대도시답사기 `쌀·米·Rice`를 냈다.

건축물로 근대사를 기록하다보니 사람을 만났다. 일제 강점기 때 한센병으로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전남 고흥 소록도로 강제 이주된 이었다. 그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해 거세됐고 벽돌 등 군수품을 만들다 다리가 파상풍에 걸려 무릎 밑이 다 잘렸다. 겨울철에도 가마니를 만들다 두 손마저 동상으로 잃었다.

전 사진가는 일본 지배로 뒤틀린 인생의 변곡을 맞은 인물을 기록하기로 했다.

전 사진가는 "당시 일본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의 처지를 한 사람으로 다 대변되는 거 같았다"며 "그 분을 찍고 난 이후에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행한 전쟁, 침략으로 인한 민초들의 아픔을 기록해보자는 게 `제국의 제국`"이라고 말했다.

전 사진가는 국내와 중국을 휘저으며 일제 침략에 의해 파생된 여러가지 현상을 기록했다.

국내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담았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엔 당시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을 기록했다.

강제 이주된 흔적을 찾아서 제주도로 이동했다. 제주에서는 알뜨르비행장에서 격무를 했던 이백련 씨를 비행기 격납고 앞에서 기록했고, 제주도 송악산에 어뢰정 기지 동원 노동자, 일본 탄약 저장 동굴을 팔 때 동원된 김팔복 할아버지(사망)를 동굴에 모셔서 촬영을 했다.

전 사진가는 "일제로 인해 자신의 삶의 궤적이 달라진 곳에서 촬영을 부탁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대부분 수락을 해주셨다"며 "상처로 상처를 잊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남경대학살, 일본 731부대 만행 등을 기록했다.

전 사진가의 `제국의 제국` 기록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8년간의 프로젝트였다. 긴 호흡을 가져가며 꾸준히 역사를 담았다.

전 사진가는 "그동안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분들을 찾는 게 어려웠지만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록 대상을 건축물에서 인물로 바꾼 것은 `한계성`과 `지속성`에 주목해서다.

전 사진가는 "건축물의 시선은 나중에도 찍을 수 있지만 사람의 수명은 한계가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행한 전쟁과 침략으로 인한 파생된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늦으면 늦을수록 그 흔적이 사라지기 때문에 민초 기록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의 고통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폭피해자의 경우 대를 이어서 후유증이 나타난다. 고통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며 "이 부분을 후세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사진가로서 소명은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은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장기진(한국인) 2003년 한국 고흥 소록도 시체해부대. 단종에, 가마니와 벽돌을 만들다 입은 동상과 파상풍으로 팔다리가 절단됨.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장기진(한국인) 2003년 한국 고흥 소록도 시체해부대. 단종에, 가마니와 벽돌을 만들다 입은 동상과 파상풍으로 팔다리가 절단됨.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예취평(倪翠萍 중국인) 2008년 중국 강소성 남경대학살기념관. 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부모를 살해했고 자신은 일본군이 발사한 총이 어깨를 관통해 불구. 총검으로 뒷머리를 찔러 10여cm의 자상이 남아있음.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예취평(倪翠萍 중국인) 2008년 중국 강소성 남경대학살기념관. 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부모를 살해했고 자신은 일본군이 발사한 총이 어깨를 관통해 불구. 총검으로 뒷머리를 찔러 10여cm의 자상이 남아있음.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송악산 어뢰정기지 노동자들. 문도기, 오성학 ,허경일(왼쪽부터) 2009년 한국 제주 송악산.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송악산 어뢰정기지 노동자들. 문도기, 오성학 ,허경일(왼쪽부터) 2009년 한국 제주 송악산.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김오순(한국인) 2008년 한국 대전 일본군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감. 열악한 주거지에서 홀로 살다 2011년 사망.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김오순(한국인) 2008년 한국 대전 일본군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감. 열악한 주거지에서 홀로 살다 2011년 사망.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화선 할머니.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화선 할머니.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이옥선(왼쪽)과 문필기(한국인). 2006년 한국 경기 광주 나눔의집.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이옥선(왼쪽)과 문필기(한국인). 2006년 한국 경기 광주 나눔의집. 사진=전재홍 사진가 제공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