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긴레이홀

다음 행선지로 도쿄를 선택했을 때 설렘이 가득했다. 예술영화관의 본지와 같은 시부야 지역을 비롯하여 가지각색의 색깔을 가진 독특한 영화관들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도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먼 거리를 달려왔음에도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바삐 발걸음을 옮겨 영화관부터 찾아갔다.

그렇게 도쿄의 첫 탐방지인 긴레이홀은 마흔 여섯 살쯤 되는 나이를 가진 오래된 극장이다. 정확한 나이를 말하지 못하고 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 극장의 역사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53년 즈음부터 `긴레이좌`라는 단관극장이 있었다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지만 1958년 크리스마스에 극장은 화마에 휩싸였다. 이후 1960년에 새로 빌딩이 세워지고, 그대로 건물의 1층에 `긴레이홀`이 들어섰다. 지금의 `명화좌(2편의 영화를 티켓 한 장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동시상영관) 긴레이홀`은 현재 오너가 이러한 스타일을 정립한 1974년을 시작으로 본다.

`긴레이홀`이 위치한 곳은 카쿠라자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게이샤들이 있는 요정 거리가 있는 곳으로 최근엔 조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이러한 가게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같은 지역의 문화를 담아 카쿠라자카 영화제를 매 가을마다 연다. 이 덕분인지 최근 젊은 관객도 늘어났다. 이곳의 오너는 그렇게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벽에 걸린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 영사기 사진을 보고 이에 대해 물으니 그가 나리타 창고에 모아둔 필름 영사기만 150대 정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잘 정비해서 다시 필름을 상영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최근 지어진 극장들에는 빔프로젝터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필름 영사기들은 여전히 창고에 뒤죽박죽 놓여있다고 했다. 그 중 쇼와 초기(1920년대 초반)의 영사기도 있어서 가끔 행사처럼 상영하기도 한다며 자랑스럽게 또 한 장의 사진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명화좌`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되도록 많이 보여주고픈 욕심때문인 것 같았다. 연간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시네마 패스포트`는 `긴레이홀`만의 특별한 회원제도이다. 물론 특정기간동안 특정비용만 지불하는 플랫이라는 일본의 배급시스템이 이를 가능케했다. 이 때문인지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기보다 어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감각이 긴레이홀의 관객들에게 깔려있었다.

관계자분이 쑥스럽게 내민 한 장의 사진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1974년 `명화좌 긴레이홀`로써 첫 오픈을 했을 때의 사진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극장 입구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도 일년 간 15만여명의 관객들이 그곳을 왔다간다. 지방은 점점 명화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그곳이 여전히 15만여명의 관객을 부르는 것은 `긴레이홀`만의 극장과 관객,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것을 엮는 멋진 솜씨덕분일 것이다.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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