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떨어진 후진 문명의 상태를 뜻하는 야만(野蠻)은 중화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은 주변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칭하며 낮춰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쓰임이 줄어들었고 만(蠻)은 오랑캐, 미개인을 대표하는 말로 살아남았다.

인류의 역사는 문명과 야만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혼란의 연속이다.

서양사에서 야만의 시대로 평가되는 시기는 게르만인이 유럽의 패자로 떠오른 시기다. 게르만인은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의 바바리안이라 불리던 야만족이었다. 게르만족은 국가체제를 갖추면서 야만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법에 의지해 질서 실현에 힘을 기울였고 로마 사회 체제도 흡수했다.

근대 문명을 열었다는 로마도 끊임 없는 정복사업 속에 세력을 키웠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그리스의 철학 및 예술, 종교 등을 제국 곳곳에 퍼뜨렸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동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사상 가장 잔인한 군대로 손꼽히던 몽골족도 원제국으로 체제를 정비하며 한족의 문화에 동화돼 갔다.

야만의 시대가 스스로 문명의 등불을 밝히는 까닭은 사회의 지속발전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누가 미래를 위해 준비하랴. 약탈의 끝에는 야만의 비루함이 남는다는 걸 입증해야 인류가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5·18 광주항쟁을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하는 이유다. 당시의 참상은 차마 글로 옮기기도 힘들 정도다. 야만의 시대 새겨진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상흔이다.

정의, 평화, 자유, 공존과 같은 가치가 폭력에 흔들리면 문명은 퇴보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피해를 입는다. 극소수만이 영화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야만의 시대를 경계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2003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있을 때 쓴 사설의 한 구절은 시간이 흘러도 통용된다.

"야만의 시대, 평화를 깨는 세력을 물리치는 힘은 시민사회의 성숙된 힘이 뭉쳐질 때 가능하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보인 그 평화의 힘이 온 세계로 번질 때 우리는 야만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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