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 한 판소리 음반 속 여류명창에 이어, 이번에는 그 시대 판소리 음반의 양상과 판소리가 향유되던 모습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판소리는 유성기음반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유성기음반이 전성기를 맞이하던 1930년대에는 판소리가 창극으로써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창극에 사용되던 몇몇 음악은 대중가요에 맞서 `판소리전집류음반`으로 취입됐다. 그렇기에 이 시기 판소리가 겪은 변화와 양상들은 판소리 역사에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게 된다.

판소리의 향유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판소리는 권번과 여류명창을 중심으로 전승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전과 다르게 완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짜인 몇몇의 대목을 중심으로 판소리의 전승이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더욱 세련된 고정선율을 형성했다. 전집류 이전 판소리 음반을 들어보면, 같은 대목의 표현이라도 취입된 시기와 방식에 따라 음악적 짜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화중선과 같은 여류명창, 그리고 전집류를 주로 취입하던 시기의 음반은 거의 음악적 짜임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창극공연을 통해 소리뿐만 아니라 여러 효과음과 반주가 더해져 음악적 밀도는 점차 높아졌고, 사설 또한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유성기음반이라는 제약된 시간 안에 창자의 기량을 드러내는 방법은 음악적 완성도를 탄탄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판소리에 세련미를 가져왔지만, 즉흥이 사라지고 고정선율로 자리 잡게 되는 경향을 가져오기도 했다.

1930년대는 `대중`의 개념이 처음으로 자리 잡은 시기다. 당시 대중들이 선호하던 가요들을 통칭해 대중음악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판소리에도 가요화가 진행됐다. 판소리는 본디 긴 이야기를 내포하는 서사음악이지만 점점 서정성을 강조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유성기음반이라는 도구의 제약성과 더불어 대중음악과의 경쟁에서 비롯된 변화이기도 했다. 특히 음반을 듣는 대중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으며 이들을 끌어당길 매력적인 요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3분 안에 최대한 서정성을 과장해 취입하게 됐고, 이는 판소리의 계면화를 불러일으켰다. 임방울의 `쑥대머리`와 같은 절절한 계면길 위주의 대목들이 취입됐으며, 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극적 장르의 유행 또한 판소리음반의 취입양상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들이 판소리를 서사보다는 서정적 음악으로 변화시켰으며 가요화, 극화를 촉진시켰다. 때문에 극화된 소리는 전집류로서 그 양상을 보였고, 나머지 판소리음반은 토막소리로서 그 양상을 보였다. 가야금을 반주 삼아 짧은 대목으로 부를 수 있는 가야금병창도 인기 있는 음반 중 하나였다. 이는 판소리가 대중음악과 비슷하게 전반적으로 가벼워지고, 과장되고, 서정적인 경향을 그대로 반영해 변화한 결과다. 즉 1930, 40년대의 판소리는 창극화와 그에 따른 계면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담은 전집류음반의 출반으로 그 의의를 요약해 볼 수 있다.

이용탁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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