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대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어제 즉위 하면서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렸다. 그는 첫 소감으로 "(일본)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세계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며 평화에 방점을 두었다. 여기까지는 전 날 퇴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마지막 메시지와 맥을 함께 한다. 다만,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에 대한 수호 의지를 밝히지 않아 여러 해석을 낳는다. 새 일왕 시대를 맞아 평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기대하는 우리로서는 걸리는 대목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레이와의 정신을 살려 국제사회에서 화합과 번영의 꽃을 피우는 데 앞장서야 마땅하다.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외교 갈등이 촉발된 이래 일본은 초등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까지 포함시켰고, 경제보복 검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아키히토 전 일왕이 일본의 우경화한 정치인들과 달리 양심세력의 상징으로 존재한 것처럼 나루히토 일왕의 역할이 더 없이 중차대하다. 주변국에 피해를 준 과거사를 반성하고, 화해와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이성과 상식의 바탕 아래 평화헌법 개정을 막는 수호자가 돼야 하고, 한일 갈등을 풀어나가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

우리로서도 두 나라 관계가 더 꼬이기 전에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초계기 마찰에서 보듯 한일 양국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확대재생산 해왔다. 외교 채널마저 꽉 막혀 있고 보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 연장 차원에서 갈등을 부추긴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는 하나 언제까지 앙숙으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일(反日)-친일(親日)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용일(用日)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사고와 접근이 아쉽다. 다음 달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모멘텀 삼아 극일(克日)의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