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국민의 혈세`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을 테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들만의 행위에 왜 세금을 낭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로또 등의 복권, 토토 경마 경륜 경정 강원카지노 같은 국가공인 `도박`, 술 담배 등에서 뜯어낸 나랏 돈 중의 일부를, 예술에 쓰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신다.`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한 건전한 정신, 정서, 인식의 함양 또한, 나라를 나라답게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

옛날에 자식이 `예술`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화를 내셨다.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니?" 예술가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업도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대중이 아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도 1%는 된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나름대로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예술가도 5%는 된다. 예술가의 50%는 취미생활로 즐긴다.

하지만 예술가의 40% 정도는 `직업예술가`로서 살기가 녹록지 않다. 잠잘 데 있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만사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예술가 또한,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숱한 그 것 들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직업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입을 보면, 사실 그 본 예술행위로 버는 돈보다, 강의와 심사와 관련 알바 등의 부수입이 훨씬 많다. 이 생계형 예술가들이 바로 국가보조금 타 먹는 예술가들이다.

`창작지원금` 형태로 나오는 국가보조금은,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자족감을 준다. 내가 대중이 자기 돈을 직접 들여 소비해주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창작지원금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진짜 예술가라고!

공연예술 작품은 국가보조금을 받아야만 제작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3000만 원 정도 지원받았을 때, 수십여 명이 한두 달 이상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인건비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보조금 선정 사업이기 때문에, 일단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고, 대중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

국가보조금은 예술가에게 계륵이거나 필요악이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지 않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 받고 싶다고 쉬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예술가로 살기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예술가는 많은지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보조금 받겠다고 경쟁하는 것 부터가 왠 지 서글프다. 국가보조금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e나라도움`은 보조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며, 보조금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조금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다`고 한다. 말은 번드르르 좋은데, 실시 3년째, e나라도움시스템은 악명이 드높다. 공무원은 `써보니 참 편리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술가들에게는 고난도 수학문제나 다름없다.

일단 지원할 때부터 쉽지 않다. 하다 하다 안 돼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하다.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배 부른 소리 같지만 더욱 난관이다.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 보조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정보화하여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이 `자동화, 정보화`가 예술가에는 산 넘어 산, `넘사벽`이다. 기획재정부와 재단의 담당공무원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여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겨우 해낸 이가 대부분이다. 예술가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을 넘어 통제하`려는 것일까? 예술가가 그 예술에 충실해야지 보조금 타내는 지엽적인 과정에 정열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예술가도 좀 쉽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간략화되기를 촉구한다. 일단 `도움`부터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무슨 동냥아치 취급하는 말 같다. 예술가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이들이지 거지가 아니다.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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