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의 업적은 대부분 책으로 정리하여 기념한다. 그런데 한 영화감독은 김우창 교수(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의 사상과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 그는 최정단 영화감독이다. 김우창 교수의 제자인 그는 2004년 김 교수의 정년퇴임 출판기념회를 카메라로 찍기 시작한 이후 2014년 영화사를 설립하여 김우창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는 5월 전주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에 출품해 올해 하반기에는 해외영화제에도 다큐를 소개할 예정이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더라도 수 억원의 돈이 들어가는 다큐멘터리를 16년째 진행하고 있다니 놀랍다. 그것도 인문학자의 사상과 삶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으니 인문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도 당연히 관심이 가는 일이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우리나라 인문학자에 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이다. 해외의 경우 철학자 `질 들뢰즈의 A to Z`와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있다.

최 감독의 제작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최 감독은 김 교수의 깊은 사유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진주아파트 방화와 살해 사건을 예로 들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인문학의 공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의 삶이 담긴 다큐를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얘기하였다.

영화에는 한 고등학생이 김우창의 책을 읽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접고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이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한 대학교수가 본인이 김우창의 글을 만나지 못했다면 엄청나게 타락했을 거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잃기 쉽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 체하면서 살려고 한다. 스스로 느낀 삶의 진실이 아니라 세상에서 좋다고 높이 치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헛된 명성을 쫓는 가짜의 삶을 살고 있다. 김우창 교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은 어떠한 삶의 지침 혹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 감독에게는 다큐 제작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난해한 책이나 딱딱한 강의가 아닌 수려한 영상을 통해 인문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 감독은 다큐를 통해 한국인문학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국인문학이 제 3세계 변방 학문에서 한류 돌풍의 신근원지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김 교수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인문학자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석학으로서의 김우창의 면모는 외국의 작가, 사상가들과의 교류에서 드러난다. 일본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은 김우창과 본인의 생각이 뚜렷이 다름에도 김우창을 존경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두 분 중 한 분이 한국의 김우창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꼽히는 `아카데미아 암브로시아나`는 2018년 10월 19일 밀라노에 있는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에서 임명식을 열고 김우창 교수를 학회의 새로운 정회원으로 선출했다.

민음사는 김우창 전집 19권을 발간하였다. 전체 1만 5000쪽이므로 한 권 당 790쪽 정도가 되니 보통 책 40-50 권 정도의 분량이 된다. 이런 방대한 저작을 통해 김우창 교수는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분야의 서구이론을 소화해서 우리사회와 삶의 문제들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성찰하는 사상가로 활동하였다.

필자는 1978년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전집 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일제 시대 활동했던 만해 한용운을 말한다. 당시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물음에 대하여", "나와 우리"를 읽으며 글의 긴 호흡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항해하는 김우창의 깊은 사색의 눈을 통해 나와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영기 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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