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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야기] 시대를 기억하는 말들

2019-04-18기사 편집 2019-04-18 08: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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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며칠 전, 학생들의 비평문을 첨삭하면서 재미있는 표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에 신조어들을 잘 모아두면, 언젠가는 사진첩처럼 그 시대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신어(신조어)는 근래에 들어 그 조어 현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비단 최근의 것만은 아니다. 이전에도 그 당시의 사회·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어휘가 등장하곤 했다. 1962년 즈음에는 '미스터 마가린'이라는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수목(樹木)처럼 산뜻하고 멋있는 신사'라는 뜻이라 한다(경향신문 1962년 7월 13일 자). 아마도 마가린은 버터와 다르게 식물성 지방을 주원료로 하기에 이른바 '버터남' 혹은 '느끼남'과 대응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필수가 된 시대 이전에 'PCS폰', '시티폰', '삐삐'로 호출하던 시절의 '삐삐팅'과 같은 말들은 지금의 '랜선만남', '랜선친구'와 견주어 시대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 시장이 매우 성장하면서 관련 어휘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지난 우리말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고인물'도 이러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한 사회의 시대가 지닌 모습은 당대의 광고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예로 자동차 광고의 어휘들을 보면 시대별 양상을 볼 수 있다. 1974년의 현대자동차 포니 광고에서 '각종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 포니는 40개국의 해외 시장에서 세계 일류 메이커의 자동차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1970년대는 자동차 산업의 초기라는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낯부끄러울 수 있는 '세계 일류'와 같은 표현도 제품의 성능과 경쟁력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이어 1980년대에는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자동차 산업도 활기를 얻는다. 1986년에는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포니엑셀'을 첫 수출에 성공하며 이전까지 성능 위주였던 광고문이 변화를 꾀한다. 이제는 자동차를 사면서 소비자가 얻게 될 것만 같은 다양한 가치를 부각하는 즉, '뉴 리더', '품위', '중견 사회인', '중후한'과 같은 말들을 광고에 삽입하여 제품을 알리기도 한다. 1980년대는 지금만큼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 구매가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 위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보유 대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가구당 거의 1대 수준으로 자동차를 보유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광고 언어들의 양상이 나타난다. 자동차 내·외장의 미적 요소를 부각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통한 상호 관계 즉,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자동차의 역할을 다루기도 하며, 자기만족의 삶을 위한 도구로 자동차를 보여주는 등 감성적 소구를 활용할 수 있는 광고 언어를 구성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환경 문제를 의식한 '에코', '친환경' 등의 말로 자동차 광고를 다루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차의 다양한 면을 광고하는 말에 따라서 시대별로 자동차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파트 이름에서도 재미있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음 우리말 이야기에서 이어가기로 하며 이번 이야기는 여기에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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