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V 연속극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직위 중에 하나가 바로 `디자인 실장`이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디자이너란 사람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아주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그랬지 않을까 싶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현존하는 상황을 더 선호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고안해 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디자인한다`라고 디자이너를 설명했다. 즉 무언가 자신이 더 좋아하고 원하는 예술적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조명 디자이너라 불리고 있는 필자는 그리 창조적이거나 예술적인 것 같지도 않아 `내가 과연 디자이너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인가?` 스스로 묻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각 개인은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인생의 디자이너 들이다. 관객들은 텅 빈 무대를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필자와 같이 공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텅 빈 무대와 객석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어둡고 컴컴했던 텅 빈 무대가 각종 장치와 조명 등으로 가득 채워져 관객들 앞에서 감동을 만들어내고 공연이 끝난 후 또 다시 철거되어 다시 텅 비어지는 무대를 보면 무대는 마치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에 관련된 여러 디자이너들이 텅 빈 무대를 각자 자신의 디자인 분야를 이용해 멋진 무대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여 만들어 채우는 삶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모든 나의 작품들이 최고의 찬사를 받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이 단 한 두 개만 된다고 해도 성공했다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내가 담당하는 작품에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하는 작품은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내 인생의 멋진 디자인을 위해 언제나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의 멋진 디자이너가 되어보자.

윤진영 무대조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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