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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악기개량과 국악 관현악

2019-03-12기사 편집 2019-03-12 08: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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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악의 대중화 중, 이번에 소개 할 분야는 악기개량과 국악 관현악이다. 앞서 소개한 악기개량을 간단히 되짚어보자면, 국악기는 5음 음계중심의 음악들을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고,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위해 악기개량이 필요하게 됐다고 요약할 수 있다. 악기개량의 핵심은 정확한 음정과 음량의 크기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연주상의 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악기개량이 시작됐고, 이는 국악 관현악의 시발점이 되었다.

1964년 초 서양오케스트라의 연주형태를 도입해 발족한 최초의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본격적인 전통악기를 이용한 창작곡 연주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KBS국악관현악단·중앙국악관현악단·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국악창작단 등이 만들어지면서 창작곡의 비중이 한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악단 연주의 비중은 매우 높아진 데 비해 악기의 개량은 크게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듯 악기 개량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연주자들에게 요구되는 작곡자의 무리한 작곡기법은 전통악기 연주자들을 골머리만 앓게 만들었다. 국악기로 창작곡을 연주할 경우 기술적인 연습과 빠른 템포의 핑거링 연습뿐만 아니라 전통 악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음을 낼 수 있도록 음 자체를 창조하는 작업부터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효율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전통악기의 좁은 음역으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 중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1994년 박범훈 선생은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아시아'를 창단했다. 이 악단은 한중일의 각 나라를 순회하며 무대에 올랐는데, 그 당시 한국의 가야금은 12현이었고 금의 한 종류인 일본의 '고토'는 19현 고토와 21현 고토의 두 종류가 있었다. 또한 중국의 경우에는 22현의 '고쟁'이 있었다. 이 무대는 각 나라에서 두 곡씩 작곡해 연주됐는데,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악기 개량이 이뤄져 있었다. 그래서 자국의 곡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곡까지도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하며 자연스럽게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 가야금은 12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음역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줄이 부족해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악기 자체의 음역 적응 불가능으로 인해 다른 나라 작곡가들은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연주할 수 있는 부분만을 짧게 작곡하는 방법밖에 없어 합연 중 우리 연주자들은 충분한 기량을 뽐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해금의 경우 중국에서 벌써 '얼후'라는 악기로 개량돼 사용되고 있었다. 그들은 '얼후'로 바이올린보다도 더 다양한 기교를 구사했다. 연주 기량의 문제가 아닌, 불가피한 여건에서 비롯된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악기에 대한 '자존심' 만을 고수해왔던 것을 직접 경험한 뒤로 1995년인 다음 해에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악기개량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도 수도 없는 분쟁과 논쟁이 오갔었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지금의 개량악기들이 탄생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가야금은 중국·일본의 현악기보다 줄이 더 많은(더 많은 음을 낼 수 있는) 25현 가야금으로 재탄생됐다. 대금 또한 키를 부착해 반음연주를 가능케 했다. 타악기의 경우에는 아예 중국의 모듬북을 수용해 연주했다.

우리음악은 점점 전문화되고 있다. 서양오케스트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연주 전 조율 작업을 하기도 하고, 작곡법, 지휘법 등 더 정밀하고 세세한 음악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과연 우리음악이라 볼 수 있는가'하는 비판적인 의문점을 제기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올바른 행보' 라는 긍정적인 박수갈채를 보내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수용하는 사람들도 변해간다. 악기도 그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악기개량은 서양의 것만을 좇는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절대 아니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우리의 전통을 가둬두는 것은 진정으로 그것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세워야 할 것이다. 자존심을 세워 많은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이 우리의 전통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이용탁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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