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30대 청년들에게 요즘 자신을 붙잡고 있는 단어를 물어본 적이 있다. 꿈, 미래, 생명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잔고`였다. 이 시대 청년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 청년들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청년수당과 청년창업, 청년임대주택 등 정책적으로도 청년세대와 관련된 지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년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쩌면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세대를 지나왔고, 내 아이는 아직 그 세대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당사자`가 아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

2018년 가장 핫한 유행어 중에 `인싸`가 있다. `인사이더(insider)`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인싸템, 인싸음식, 인싸춤, 핵인싸 등의 용어들과 함께 특정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문체부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를 보자. 일상에서 문화행사 관람율은 81.5%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분야별 관람율에서는 영화관람이 75.8%로 압도적이다. 대중음악이나 미술전시, 연극, 뮤지컬 등은 20% 이하로 큰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인싸`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르 격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장르 내에서는 `인싸` 현상은 강화된다. 1천만 명이 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국의 약 3천 개에 이르는 스크린에서도 상영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단순히 시장이나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싸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뒤처지지 않겠다는 경쟁의식, 조직이건 또래이건 일종의 내부자 심리 등 두려움과 욕망이 뒤범벅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국민`과 외국인 혹은 난민 등을 구분한다거나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집단과 계급의 구별에 따른 욕망을 담을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인싸`를 선언하거나 혹은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일터에서 수많은 갑질에도 저항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인싸`는 설령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의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변화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별개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어느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사실 그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으며, 사회가 바뀌지 않는데 개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동시대 빈곤과 불평등 문화에 대해 평생을 연구한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77)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모두와 함께하고자 둘러봐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옆에 사는 사람들, 일하는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듣고, 영향을 주고받는 겁니다."(<경향신문>, 2019.1.31.)

세계적인 석학은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어느 시기 어떤 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가 발딛고 있는 삶터와 일터에서, 즉 자신의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 누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자신의 손과 입으로 수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위대한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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