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년 전 오늘 1793년 1월 21일은 프랑스 루이 16세가 혁명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38세의 나이로 공개 처형된 날이다. 혼담이 오가던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조세프가 일찍 죽으면서 형 대신 혼담의 주인공이 된 루이 오귀스트(루이 16세)와 결혼하게 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해 10월 16일 남편이 죽은 바로 그 장소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구의 2%만을 차지하던 고위 성직자와 귀족계급이 누리던 독점적 특권에 대해 내재되어 있던 사회구조적인 불만, 1788년 겨울에 닥친 한파와 기근으로 고통받던 파리 민중들의 불평등한 사회 체제를 바로 잡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인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촉발된 프랑스 대혁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2012년 휴 잭맨, 러셀 크로, 앤 해서웨이가 열연한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에서 작가가 알리려고 했던 것 또한 프랑스혁명(7월 혁명) 당시의 처참한 시대상과 프랑스 국민들이 추구했던 시대정신이었다.

오랜 세월 수차례의 혁명을 거치며 프랑스 국민들이 깨고자 했던 것은 절대군주제와 특권으로 대표되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이었다.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의 역사에도 앙시앵레짐을 깨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석학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등에 의해 체계화되어 2000년 동안을 지배해 왔던 지구중심적 우주론은 중세시대 들어 종교지배계급에 의해 공인된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16세기 초 폴란드 신부였던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하게 되고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펴내 서서히 태양중심설이 확대되자 로마교황청은 기독교세계관을 무너뜨리는 시도로 간주, 금서로 지정하기도 한다.

코페르니쿠스로 인해 무너진 앙시앵레짐은 새로운 세계관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케플러, 갈릴레오 등 많은 과학자들이 태양계의 운행원리와 태양계 행성과 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우주분야에 퀀텀점프를 가져다 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갈릴레오 역시 앙시앵레짐에 도전한 대표적인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중반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20대에 피사대학 수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 그는 태양의 흑점, 달 표면상태, 목성의 위성, 토성의 고리 등 새로운 발견들을 하게 되고 실제 관측데이터를 근거로 천동설을 증명하는 등 당시 로마 카톨릭이 주도하던 지구중심 세계관에 도전한다.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말년까지 가택연금 수준의 징벌을 당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앙시앵레짐에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준 과학자로 평가된다.

민간우주탐사, 우주관광, 우주자원채굴, 초소형 군집위성을 통한 관측수요, 발사 및 통신관제 공유, 재사용발사체 등 국가주도로 유지되어 온 우주개발의 앙시앵레짐(Old Space)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우주개발의 영역이 민간기업에 의해 변화된 패러다임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우주개발 분야를 통틀어 뉴 스페이스(New Space)라고 부른다. 기존 우주개발 패러다임이나 시장구조에 한계를 느낀 민간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재사용발사체를 통한 발사비 절감 및 발사기회 확대와 초소형위성을 통한 신규 서비스 창출, 우주탐사 등의 분야에서 상당부분 성공을 이루어 점차 관련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과 테슬라,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회장은 정부주도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우주탐사에 도전장을 내밀고, 멀지 않은 미래에 누구에게나 우주관광과 우주탐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비전을 갖고 나사(NASA) 등 정부기관이 갖고 있던 앙시앵레짐에 도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으로 각인된 4차산업혁명에만 익숙한 우리나라에도 New Space의 혁명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1월 21일에 얽힌 혁명의 역사를 돌아보며 New Space시대를 거부하는 우주개발의 앙시앵레짐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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