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에 가면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왜일까? 너무 일찍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일 수도 있고, 아직도 죽음이 꼭 슬퍼해야 하는 일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지인의 상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구순 어머니를 사진틀 속에 모시고 검은 옷을 입은 상주들이 문상객과 나누는 안부가 편안해 보였다. 곡소리보다는 조용한 목소리들이 오갔고 간혹 웃음소리도 들렸다. 한쪽에서는 고인의 생애를 추억할 수 있도록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한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돌아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주가 고인의 손녀가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썼다는 `그때, 우리 할머니`라는 책을 한 권씩 나눠 주고 있었다. 책 속의 삽화도 손녀가 직접 그린 거라 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한 후 대전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셨다는 지인의 어머니. 어머니는 책머리에서 손녀 덕에 두서 없지만 온전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고마워하셨다. 손녀는 손녀대로 자칫 진부할지도 모르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할머니의 생애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 같다. 조금 먼저 세상을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겪은 여성으로서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사랑을 나눈 것이다.

어머니, 내게는 기억나는 일들이 불과 서너 가지 뿐이긴 하지만 누구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신비로운 말일 것 같다. 늘 편안하고 매사에 감사해했던 분이라 소개를 하고 나서 지인은 자기가 태어나서 가장 좋았던 일이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이었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께서도, 책을 엮어낸 손녀도 그리고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이 엄마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타고난 환경적 요인도 인품을 가꿔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늘 사랑하면서 행복을 미루지 않는 고인의 삶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잘 만들어진 해피엔딩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흐뭇했다.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책을 읽으며 소소한 바람 하나가 생겼다. 나 또한 그림자를 거두고 이 세상 떠나는 날 아주 조금만 아쉬워하며 아니, 그만큼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내 유전자를 나눠가진 아들들과 손주들이 나에게 복되게 살다 간 사람이라 말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와 알고 지냈던 사람들 모두 내 평소의 신념을 알아채고 유쾌한 장난꾸러기로 참 많이 웃다 갔다고 꽉 채워 술잔 기울일 수 있기를….

이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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