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은 그의 신작 소설 `오리진`에서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미래의 위협이라고 설정했다. 하지만 소설의 결론은 인류와 인공지능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 관계로 묘사된다. 알파고의 충격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에게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먼 훗날에나 가능한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로 생각돼왔다.

하지만, 초연결과 초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이미 우리 주변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초연결을 통해 확보되는 방대한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훌륭한 학습자원이 되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컴퓨터 H/W와 S/W 기술은 이제 누구나 손쉽게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인공지능은 전 산업분야는 물론, 의료, 예술 분야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올해 초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CES 2019의 주인공도 단연 인공지능이었다. 이제 지능을 탑재하지 않은 전자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공지능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자동으로 차량을 운행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운전자의 마음 상태까지 보살핀다.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 거대한 변화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인지, 아니면 파도를 타고 넘어 더 큰 발전의 기회를 얻을지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국가 R&D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혁신성장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의 시기에 누구보다 빨리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우수한 인재와 출연(연) 육성 포함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였다. 지능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패러다임의 대 전환 시대를 맞아 출연(연) 역시 새로운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일환이 출연(연)의 시대적 사명을 되짚어 보고, 미래지향적인 출연(연)의 역할을 도출해내는 R&R (Role and Responsibility, 시대적인 소명과 이를 감당하기 위한 책무) 정립이다.

최근 출연(연)에서 작성한 R&R을 들여다보면 모든 출연연이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뛰어넘을 자기만의 장점을 찾아내 발전 전략을 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IST는 첨단 로봇과 빅데이터 기반 기술을 선점해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ETRI는 `디지털 미래기술 개발로 인류가 직면한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지능화에 기여한다`는 사명 선언문을 채택하고 디지털 지능화 핵심 플랫폼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기계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의 스마트 생산장비 혁신 선도를 제안했고, 전통의학을 연구하는 한의학연구원에서조차 4차 산업혁명시대 맞춤의료를 선도하는 인공지능 한의사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수요 전략물질 확보 기술 개발, 연구데이터의 축적 및 공유, 재료 연구소는 정보전자 기능소재 개발, 첨단 화학소재 개발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할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꽃은 융합을 통해 시장에서 피어난다. 정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출연(연)이 가진 우수한 기술과 역량을 융합해 시장에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논문 몇 편, 특허 몇 건의 성과를 겨룰 것이 아니라, 기술과 시장이 만나고, 데이터가 융합하여 지능이 꽃피고, 가치가 창출되는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출연(연)이 보유한 기술을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 테스트하고 자신이 가진 기술 또는 제품과 융합해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데서 한 단계 넘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는 플랫폼의 제공은 필수적이다. 기반이 되는 핵심 원천 연구와 인프라의 제공, 그리고 기술이 융합되어 시장과 만나는 플랫폼 제공을 통해 출연(연)이 우리나라 R&D의 Smile Curve를 한 단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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