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탄자니아의 마감바 중학교 3학년인 음펨바(Erasto Mpemba)는 학교에서 끓인 우유와 설탕을 혼합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부족한 냉동고의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혼합물을 식히지 않은 채로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나중에 냉동고를 열어본 음펨바는 끓인 우유로 만든 재료를 식히고 냉동고에 집어넣던 친구들의 것보다 자신의 아이스크림이 먼저 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펨바는 이런 현상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저 착각이라고 무시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신기한 기억을 잊지 않고 꾸준히 의문을 가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음펨바는 학교에 물리학 강의를 하러 온 데니스 오스본 박사에게 이 현상을 얘기했다. 오스본 박사는 그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고 실험을 반복한다. 결국 오스본 박사는 음펨바가 얘기한 현상을 직접 확인하고 1969년에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먼저 얼게 되는 현상을 `음펨바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이 후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여전히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물이 어는 현상에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온도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보다 복잡한 원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과학에는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얼핏 보면 지극히 당연해서 다른 결론을 내릴 여지가 없어 보이는 현상들도,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보다 복잡한 규칙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규칙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던 현상도 이런 규칙이 알려지고 나면, 말끔하게 설명되고 마침내 당연한 상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어찌 과학만 그러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도 그러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항상 의도한 대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선의로 행한 일들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변수와 동인으로 인해 복잡하고 정교한 작동원리가 숨어있다. 정교한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집 값을 잡기 위해 시행한 정책들이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거나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시행한 최저임금의 인상이 어떤 이들에게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년 동안 논쟁이 되어온 에너지 전환정책을 돌이켜보자. 이른바 `불안하고 위험한` 원자력은 치워버리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버리자는 당위성만 바라본 것이 아닌가. 신재생에너지가 정말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가의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명분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실효성을 다시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안전하고 깨끗하게 에너지를 이용하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정책이 과연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그 부작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비판을 그저 비생산적인 정치 투쟁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건실하게 유지되던 원자력 산업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생태계의 붕괴가 목전에 다다랐다. 원자력 산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의 태양광 업체와의 가격경쟁에 밀리는 국내 태양광 업체들의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환경훼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당위적 차원의 목표를 설정하고 무리하게 이루고자 하는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기술은 시행착오와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이론을 거듭 수정해가며 최적의 결과를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정책은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기에 정책의 수립과 이행은 더욱 신중해야 하고, 당초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즉시 반영하여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신년에는 정부가 과학기술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로 나라 살림을 꾸려나가기를 기대한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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