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했다며 재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부부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1·2심은 강간 혐의를 무죄로 봤으나,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대전고법 제8형사부(전지원 부장판사)는 7일 오후 2시 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39)씨의 파기환송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 6월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A씨는 2017년 4월 충남 계룡시의 한 모텔에서 말을 듣지 않으면 B씨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력을 행사할 것처럼 협박해 B씨를 성폭행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B씨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부터 재심 법정까지 일관되고 구체적이다.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며 "A씨는 모텔에 가게된 경위와 성관계 여부에 대해 진술이 번복됐다. 또 성관계를 염두에 뒀다고 진술하면서도, B씨가 적극적으로 원해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진술은 진술 자체로 모순되거나, 경험칙상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무죄를 선고한 1·2심과 관련해 "원심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의심해 증명력을 배척하고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다"며 "이런 판단은 자유심증주의 오해, 채증법칙 위반 등 사실오인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는 친구가 출국한 틈을 이용해 아내를 성폭행하고도 피해 회복 조치 없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또 누범 기간 중 저지른 범죄로 엄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이혜성 대전고등법원 기획법관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라는 대법원 환송판결의 취지와 환송 후 새롭게 추가 심리한 사정을 고려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성폭행 피해 이후 가해자에게 적극적인 대처 등을 하지 않더라도 성폭행 피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한 향후 성범죄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는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는지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1심 재판부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하급심들은 이 기준을 토대로 판단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불균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사건이 발생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이해하는 태도를 뜻한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성폭행 피해 부부의 판결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법원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안 전 지사의 항소심은 1심과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면서도 "형사재판에서 감수성까지 감안하라는 것은 증거주의에 위배될 수도 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의심이 들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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