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독립기념관법 제1조에 명시된 독립기념관의 목적이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흑성산의 너른 마당에 자리한 독립기념관은 민족사의 전당이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시작에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을 만나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와 과제 등을 짚어봤다.

대담=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올해로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다. 역사적 의의는?

"헌법 전문이 두 사건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했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헌법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은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4·19 셋 밖에 없다. 그만큼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일제에 빼앗겼을 때만 해도 황제가 유일한 주권자인 제국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황제가 병합조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나라의 주권이 일제에 넘어간 것이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국을 부정해야 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의 뿌리인가?

"1910년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민국 또는 민간정부라는 이름 아래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논리가 실제로 현실화된 것이 바로 1919년이다. 3·1독립선언과 만세시위에서는 우리가 독립되더라도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민국이나 민간정부 곧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3·1운동의 과정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라고 선언했다. 제국이 아니라 민국을 선언한 것이다. 민국의 주인은 더 이상 황제가 아니라 인민(당시는 국민보다는 인민을 더 많이 사용했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출범하게 됐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00주년을 맞아 앞으로 과제는?

"독립운동가들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국민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민주공화국을 꿈꾸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꿈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다. 남북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이후 오랫동안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부정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4년에 마지막으로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 서문에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이 "자유, 평등, 진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진보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진보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꿈꾸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는 단지 임시정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꿈을 갖고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되면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분단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족의 통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그러니 분단 상태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꿈을 이야기하기에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민족의 통합과 단결을 이루어내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을 완성하는 책무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한다."

-100주년에 발 맞춘 독립기념관의 사업은?

"3·1운동 관련 학술회의와 중국, 미국, 일본 해외특별 순회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3·1운동 관련 중요 자료,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 태극기 등의 원본을 기념관에서 특별 전시할 예정이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올해부터 4월 11일로 바뀐다. 독립기념관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여는 한편 기념관에서 대대적인 문화 행사를 갖는다. 독립운동가 인명사전 특별판도 준비하고 있다. 특별판은 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분들 100명 남짓의 독립 운동가를 대상으로 출판 계획이다. 그것과 병행해 독립운동가 1000명 정도로 웹 전시관도 준비 중에 있다."

-남북 화해평화시대에 독립기념관의 역할은?

"남북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동질적인 요소를 찾아냄으로써 이질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기념관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북한과의 교류 사업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남북이 모두 높게 평가하는 3·1운동 관련 자료 가운데 북한에 남아 있는 자료의 공동발굴과 수집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남북에서 모두 존경받는 안중근, 홍범도,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 관련 공동 기념사업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외 독립운동 조명을 위한 그 동안의 독립기념관 노력과 성과, 올해 계획은?

중국의 인민항일전쟁기념관, 남경대학살기념관, 731부대기념관, 9·18사변기념관 등과 긴밀한 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중국 안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우리가 직접 관리할 수 없어서 중국 기관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기관과 1년에 한 차례 연석회의를 열어 지속적인 교류와 연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위치한 천안과 충남북은 3·1운동 및 독립운동사에서 많은 애국 열사를 배출했다. 천안 태생으로 석오 이동녕 선생이 대표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석오 이동녕 선생의 위상과 활동에 비해 서훈 등급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이동녕 선생은 19세기 말부터 민족운동에 투신한 이래 1940년 중국 사천성 지장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줄곧 독립운동을 벌인 분이다. 활동 경력이 40년 이상 된다. 독립군 간부 양성 기관으로 유명한 신흥무관학교 설립에도 깊이 관여했고 1919년 상하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립 주역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 올해부터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바뀌는데 4월 11일이 바로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이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한 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제 국가 대한민국이 출범하게 된 것인데 이때 이동녕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장이었으니 대한민국 출범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이동녕 선생은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국무령, 주석을 역임했다. 주석에는 무려 네 차례에 걸쳐 취임했다. 임시정부 주석하면 많은 사람이 김구 선생을 떠올리지만 가장 오랫동안 주석을 지낸 분이 바로 이동녕 선생이다. 그런 분에게 독립유공자 포상의 2등급에 해당하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지금 국가보훈처에서 포상 등급에 문제가 있으면 다시 조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동녕 선생이야말로 1차 대상이 돼야 한다."

-국민 곁에 뿌리내리기 위한 독립기념관의 구상은?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독립운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국민통합의 중심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바탕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조직개편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기반조성과 환경을 구축 할 것이다. 소통과 참여를 통한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국내·외 교육 콘텐츠 개발 및 보급을 통해 전 국민이 찾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도장을 만들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노한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국민이 주인인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에게 열려 있는,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독립기념관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정리·사진=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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