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여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은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던 나라였다. 존재감 자체가 미미했고, 국제무대에서 늘 변방의 무력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미약한 존재감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전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가장 손쉽게 효과적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방법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 제패였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 주도적으로 스포츠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소위 엘리트 중심의 체육정책이다.

국가가 소수의 체육 영재들을 집단 관리하며 메달리스트를 육성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는 동서 냉전의 시기로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로 양 진영은 스포츠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확인 받으려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냉전 시대가 해체되고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된 후 스포츠를 통한 체제 경쟁은 사실상 사라졌다. 다수의 국가는 엘리트 체육 중심의 국가 체육 정책을 생활체육 정책으로 전향했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이 체육정책을 수정한 후 우리는 손쉽게 일본을 따돌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수십년 간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앞설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엘리트 중심의 체육정책을 지향했고. 일본은 생활체육 정책을 지향한 결과 한국체육이 메달순위 경쟁에서 일본을 제압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30년 가까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에 밀렸던 일본은 최근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엘리트 육성정책을 재가동했고, 그 결과 올해 개최된 아시안게임에서 손쉽게 한국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체육정책이 현재의 방향성을 유지해야 하는가의 여부이다. 아울러 한 가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국민의 총화를 이끌어 내는 수단을 과거처럼 스포츠에 의존해야 하는 가 이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변방 국가가 아니고 당당한 세계무대의 중심 국가이다.

스포츠가 아니어도 우리가 주목받을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많다.

한국의 음악은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전자제품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문화 강국이고, 경제 강국이고, 기술 강국이다. 과거에는 스포츠가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물론 한국 스포츠는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여주고 국민은 총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인이 인정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그러므로 이제 국가정책 차원에서 스포츠를 국가 위상을 높이고 브랜드를 끌어올리는 도구로 보려는 시각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스포츠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더 큰 목표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국민들보다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해야 할 대상은 체육인들이다. 체육인들이 앞장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첨병 역할을 담당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메달보다 소중한 것이 국민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올해 개최된 아시안게임을 지켜보며 한국체육 정책의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을 앞서 아시아 두 번째의 스포츠 강국임을 자부하고 엄청난 성취감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자만이었다.

우리보다 인구가 월등히 많고. 스포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국가 재정이 튼튼한 일본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음을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확인했다. 단지 일본은 스포츠를 통해 국가 브랜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국민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이 훨씬 큰 가치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노력을 통해 일본을 제압했고, 그들을 완전히 앞질렀다고 자만에 빠졌다. 이제 진지한 자세로 국가 체육정책 방향에 대해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21세기에 걸맞는 국가 체육정책의 방형은 어디인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누가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한수(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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