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 게 사람 손에 달려 있다. 강도가 칼을 휘두르면 흉기일 뿐이지만 의사의 메스는 환자를 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되지만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게 원자력이다. 김정은의 핵과 우리의 원자력발전소를 보면 안다. 같은 원자력인 데 하나는 한반도 평화와 인류를 위협하고, 다른 하나는 나라와 국민을 풍요롭게 한다.

새 정부 들어 만신창이가 된 원전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만이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의 관련 조항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에 찬성하면서다. 이로써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 이후 법까지 고치면서 대못을 박은 탈원전 정책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처지가 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원전 감축 계획을 10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전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현실 인식이다.

원자력은 양면성이 있다.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지만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위기감이 고조된 국제사회는 1953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본격적으로 눈길을 돌린다. 당시 UN총회에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제안으로 핵무기 보유국들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로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원자력은 의료와 농업 분야 등으로 영역을 대폭 확장해 신산업동력으로 기능한다.

원전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도약하게 한 디딤돌 중 하나다. 1971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에서 도입한 가압경수로를 시작으로 우여곡절 끝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 1990년 안면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사태는 지독한 `성장통`으로 볼 만하다. 밀실 추진 등에 대한 반발로 촉발됐지만 원전 관련 안전성 강화의 계기로 작용한 걸 부인하기 어렵다. 질곡의 세월을 거쳐 수출 효자품목의 반열에 올라선 한국형 원전은 재생에너지 및 탈원전 정책으로 하루 아침에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탈원전 드라이브는 불과 1년 여 만에 역기능이 숱하게 드러난 만큼 최소한 속도조절을 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신재생이라는 산토끼는 잡지 못한 채 폐해만 키우고 있고, 원전이라는 집토끼는 아예 굶어죽을 판이다. 먼저 원자력 생태계 붕괴가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 학사 전공을 결정하는 KAIST(카이스트) 2년생 중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선택한 인원은 `0`이었다. 일감이 사라지면서 우수 인력의 해외 엑소더스가 줄을 잇는다. "한국 정부의 원전 정책이 수출 능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영 파이낸셜뉴스)"는 경고도 한 귀로 흘린다.

경청과 소통의 측면에서도 급속한 탈원전은 문제가 적지 않다. 탈원전으로 가는 과정에서 20년 넘게 국민 목소리를 들은 독일의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노후 화력발전소가 속속 폐쇄되고 있는 마당이다. 원전 폐기를 밀어붙이다가 에너지 수급 이상으로 전기료가 폭등하고 블랙 아웃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나. 에너지 정책은 안보와 연관성이 깊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여파가 엄청나게 큰 사안이다. 이상론을 접고, 에너지와 환경 사이에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야 한다. 국민투표라도 해서 바닥 민심을 재확인하고, 수용할 건 수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 둘.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체코에서 원전 세일즈를 펼칠 때 현지의 반응이 첫째다. 외교적 수사가 아닌 그들의 솔직한 속내 말이다.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하던 물건을 시장으로 들고 나와 팔아야 하는 현실을 지켜보기가 우리 스스로도 편하지 않다. UAE(아랍에미레이트)에서 처럼 수출이 성사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둘째, 원자력을 악용해 만든 북핵에 너그러운 듯한 일각의 기류가 걸린다. 착한 우리 원전을 못살게 굴 게 아니라 나쁜 북핵을 먼저 손 보는 게 이치에 맞겠기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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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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