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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 음악산책] 보헤미안 랩소디

2018-11-16기사 편집 2018-11-16 07: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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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는 이를 안 본 사람은 대화에 낄 수가 없을 정도로 장안의 화제작이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룹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로 프레디의 몰랐던 많은 면을 보여준다. 일단 그가 영국에서 활동하며 살았지만, 인도 출신이었고 본명은 심지어 파로크 불사라(Farrok Bulsara)라는 사실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룹 퀸을 전설의 팝 그룹으로 단숨에 끌어올린 '보헤미안 랩소디'는 모든 면에서 파격적인 장장 6분 정도의 길이의 작품이다. 이 곡의 첫 가사인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 is dead"는 며칠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Thousand Oaks라는 도시의 총기사건 발생 이후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사건의 가해자는 12명의 생명을 이유도 없이 한 순간에 죽음으로 몰고 간 후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28살 해병대 출신의 젊은이였다.

모든 예술가에게 가난과 배고픔의 막연하고도 막막한 무명시절이 있듯, 프래디 머큐리 또한 공항에서 화물을 나르는 등, 꿈을 향해 참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 프레디의 젊은 시절 한 때의 일이고 누구나 고생의 시기는 있을 수 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준 것은 그의 음악이고, 차이코프스키나 말러가 살았던 시대와는 다행히 조금은 변화된 사회에 살았던 이유도 부인 할 수 없지만 프레디가 AIDS 환자임을 오랜 시간 숨겨왔던 것은 아마도 동성애자와 AIDS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던 당시 분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레디가 AIDS환자이기 이전에 전설의 그룹 퀸의 멤버로 인정 될 수 있었던 사회에 살았던 것은 그 자신에게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가수 마돈나의 절친이었던 그래피티 화가 키스 해링 (Keith Haring)도 그의 동성애에 대해 가족에게 이야기를 한 순간 부모한테는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 났지만, 사회는 그를 받아 줄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고 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와 말러 또한 음악 외 같은 고민을 평생 했지만, 그 당시 만약 커밍 아웃을 했다면, 모든 후원은 끊기고 사회에서 매장 당할 것을 알았기에 일기장에도 본인의 심정을 마음 놓고 적지 못했던 시절의 인물들이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알란 튜링은 1952년 당시만 해도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수모를 겪게 되자 2 년 뒤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을 택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던 시대를 살았었다. 오늘날 G20 정상회의에 당당히 각국의 영부인들과 시진을 찍을 수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의 동성인 아내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는 시대에 차이코프스키, 말러, 튜링이 살았었다면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지 생각해본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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