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멀리에 있는 줄 알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를 해야 문화재인 줄 알았다. `상천리 마애불 입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140호` 이런 간판이 이 산 길 어딘가에 문화재가 있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지만 매일 지나는 길목에 있는 이런 안내 간판들 속의 문화재는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방송이나 출판물을 통해 소개되는 것들에게는 저절로 신뢰감이 싹트지만 가까이 있는 것들한테는 신비감이 없어서인지 그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마애불이 그랬다.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안내 간판부터 만난 마애불은 한번쯤 올라가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더 이상의 궁금증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안내 간판으로만 만나던 홍산면 상천리 마애불상의 실존을 대면해야 할 일이 생겼다.

마애불이란 암벽이나 동굴의 벽 등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홍산면 상천리 마애불 역시 직육면체 가까운 커다란 바위의 한쪽 면에 불상을 새겨 놓았다.

그런데 말이 불상이었지 전혀 부처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눈은 거의 감고 있는 듯한 실눈에 동그란 코, 두툼한 입술도 인상적이었지만 투박하고 우람했다. 요즘 사람들의 미적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둥글고 큰 얼굴도 그렇고 법의를 걸친 모습과 머리의 나발 모양이 아니었다면 경외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의 불상이었다.

대부분의 사찰에 모셔진 부처의 모습을 상상하고 대면했다가 실소가 나올 부처의 모습이었다. 세련되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백제의 문화재를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부여에 살면서 한층 높아진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 홍산리 마애불상은 문화재적 감상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름 없는 동네 석수장이가 밑그림도 없이 쓱쓱 그려놓은 듯했다.

한마디로 국자만 하나 들려주면 홍산 장날 장터에서 순댓국을 말아주며 걸쭉한 입담으로 장꾼들을 상대했던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었다. 보여지는 모습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실례이지만 잘 생기고 솜씨 좋게 조성한 부처상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에게 홍산 상천리 마애불은 낯선 모습이었다.

"아마도 저 마애불의 얼굴은 당시 홍산 사람들 중 누군가를 모델로 했겠지요. 어쩌면 이 마애불을 조성한 이름 없는 석수장이의 마누라를 모델로 했는지도 모르죠. 대개 화가들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모델로 하기 마련이죠, 자신도 모르게 친근해진 사람들의 모습이 작품속에 나타나겠지요. 저 마애불을 조성하던 시대에서 추구하는 미적 기준이 그대로 반영되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홍산 면민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지요."

부여의 향토 사학자인 이 진현 님의 설명이 곁들어지지 않았다면 모든 마애불은 다 백제의 미소를 대표하는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생긴 줄 알았던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꿔놓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아이돌처럼 잘 생기고 매끈하게 빠진 백제의 불상들 속에서 홍산 상천리 마애 불상은 감초 연기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조연급 배우 같았다. 마치 두툼한 입술이 매력적인 영화 배우 유 해진을 닮기도 했고 부여의 잘 생긴 백제 불상들 속에서 역으로 튀는 캐릭터이다. 잘 생긴 배우들 사이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하고 스토리가 살 것 같지 않은 역할을 하는 배우 같은 부처님이다.

"문화재를 대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학문적으로 접근을 하면 어렵습니다. 처음엔 그냥 보는 대로 느끼는 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백제인들의 조각 솜씨에 비하면 어설프고 미숙해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친근해 보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부여에는 이런 후덕한 촌부 같은 민불들이 드물지요. 그래서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역사는 주류 문화재에만 관대하죠"

부여군 홍산면은 보부상들의 활동으로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마애불상은 아마도 그 보부상들이 지나는 길목에 그들의 안전과 부를 기원하는 의미로 새겼을 것이다. 보부상들이 조금씩 돈을 내어서 성의껏 조성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예술적 가치보다는 그들의 형편과 정서에 맞는 부처를 새겨서 정성을 다해 모셨을 것이다.

세기의 걸작들 같은 백제 문화재들을 감상하며 호강했던 눈을 조금 낮춰서 낮은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부처도 만나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알다시피 아이돌 급의 부처가 더 많은 부여에서는 이런 서민적이고 투박한 모습의 부처를 만나는 것이 더 어렵다. 오창경 해동백제영농조합법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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