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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죄와 벌

2018-10-29기사 편집 2018-10-29 07: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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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우울증, 조현병, 나이. 최근 강력사건 관련 기사들에 자주 같이 함께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광화문 1번가의 청원들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청원들은 대부분 잔혹한 살인이나 폭행, 피해자의 자살 등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 사건들에서도 피의자 혹은 가해자는 상당수 정신병 치료나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형법 10조)이나 나이(형법 9조)로 인한 형량의 감경을 언급하거나 주장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더라도 강력사건들의 경우 피의자들이 범죄 당시 음주상태 등이 아닌 정상으로 분류되는 비율은 2014년 48%에서 2017년 42.5%까지 계속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강력사건 당시 음주 상태인 비율은 38%에서 39.8% 가까이 증가하였고, 즉각적으로 음주나 정상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애매하다고 판단한 비율도 14%에서 17.7%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형법의 주요 기능은 유사한 범죄를 다른 일반인들이 짓지 않도록 하는 일반예방, 바로 그 범죄자가 다시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특별예방,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응보이다. 형벌은 개인의 자력구제를 국가와 사회가 대신 해주기 때문에 피해자 대신 응보를 해야 하며, 또 유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기능도 가져야 한다. 형벌이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범죄 억지력이 있고 재범 가능성도 줄어야 하고 피해자는 약간이나마 위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감경 사유를 등에 업은 강력범죄들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고 피해자는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우리나라 형법은 1953년 제정되었고 소년법도 1958년 제정됐다.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결정한 것은 벌써 60년도 더 전이며,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한 판결들은 과거 술에 관대한 시절 때 시작돼 축적된 것이다. 음주는 독일에서는 오히려 형량 가중사유이며, 미국이나 영국, 스위스 등 다른 국가에서는 감경사유로 인정하지 않다. 2020년 심신미약으로 감경된 형을 마치고 출소할 예정인 조두순은 이미 1996년 상해치사 판정 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사유로 형을 감경 받은 경험이 있다. 최근에야 성범죄나 미성년 대상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감경을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지만, 음주와 관련된 강력범죄 통계의 증가는 60년 동안 한국인들은 술은 용서가 된다는 것을 학습한 것을 보여준다. 범죄를 저지르고 싶을 때 한 잔 마시고 하면 형량이 감경될 확률이 그나마 높아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촉법소년들은 자신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음을 알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등이 형사미성년자들을 활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들도 있다. 형사미성년 연령은 한국보다 높은 연령을 규정한 국가도 있지만, 영국, 호주, 홍콩은 10세 미만,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12세 미만, 프랑스는 13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며 6세 미만인 경우도 있으며 형사미성년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 주도 있다. 일본도 여러 사건을 거치며 2번의 개정으로 2007년부터 형사미성년을 12세로 정하고 있다. 특히 형사미성년자들의 범죄 대상은 동일한 형사미성년자들인 경우도 많은데, 가해자인 미성년자는 보호를 받지만 정작 피해자인 미성년자들은 오히려 제대로 보호를 못 받고도 있다. 올해 안에 13세로 개정을 추진 중이기는 하지만 가장 많은 촉법소년 강력범죄가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생들인 점에서 형사미성년 연령을 12세 미만까지 줄여야 될 필요성도 여전히 주장된다.

청원 사이트의 최다 추천 청원들이 대부분 심신미약 혹은 형사미성년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법이 자신들을 범죄로부터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로부터 예방도 못하고 죄에 상응하는 벌도 제대로 주고 있지 않아 이를 악용하는 범죄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해자의 인권과 복귀 만큼만이라도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구제와 복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 아마 요즘 일반 국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시대변화와 범죄의 양상을 법에 반영해 국민도 죄와 벌이 상응한다고 공감할 수 있는 체계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황혜신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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