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음 주 진행될 무용단 정기공연을 위한 서류작업을 한창 하던 중 갑자기 외장하드에서 `삑삑` 소리가 나더니 작동하지 않았다. `파일 또는 디렉터리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읽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 창만이 외장하드의 상태를 전해주는 전부였다. 나의 외장하드는 그렇게 운명을 달리했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안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현상과 함께 아찔함과 절망감에 휩싸이는 나를 느꼈다. 나는 외장하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외장하드 복구업체에 전화를 하고 업체를 방문했다. 다행히 복구는 가능할 것이라 하나 복구비용은 20만원이라고 했다. 업체사장님께서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물었고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복구를 신청했다.

우리는 손쉬운 저장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파일을 프린트해 이중으로 보관했다. 정보를 수집하면 스크랩을 해야 했으니 더 확실하게 기억에 저장되는 장점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요즘엔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도 거의 없게 됐다. 조금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에는 상당수의 지인들 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외장하드를 사용하면 500기가가 넘는 파일들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편리함과 손쉬운 저장을 할 수 있는 간편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외장하드 복구를 맡겨놓은 이틀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던 나 자신을 보며 과학기술의 그늘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여유를 즐겼지만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생겼다. 밀린 일을 정리하며 기계에 완전한 의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과학기술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되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과 기술이 일상생활 차원에서 점차 융합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발전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기는 불가능해졌다. 과학기술을 발달시키는 주체 역시 인간이며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삶의 질이 윤택해진 건 사실이지만 진정 이게 옳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곽영은 메타댄스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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