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쳐다봐도 가슴이 뭉클하고 우수에 젖는 가을에 태어난 유명한 작곡가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마도 프란츠 리스트일 것이다.

1811년 10월 22일 태어난 리스트는 21세기에 활동 했다면 `방탄소년단`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헝가리 태생이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혈통의 리스트는 그 시대 최고의 작곡가이면서 초인적인 기교의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엘리트로써 지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능숙한 불어 실력에 언변은 물론이거니와, 연예인 같은 외모까지 더해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스타 중 스타였다. 그는 뭇여성들에 대한 화려한 편력에 심지어 36살의 나이에 유부녀인 백작부인과 사랑에 빠져 손가락질을 받아도 도피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바람둥이지만 사나이 중 사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악보 없이 명석한 두뇌와 기억력을 과시해야만 하는 무언의 법칙을 만들어낸 원수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들이나 `단테 소나타`에서 지옥도 삼켜버릴 듯 한 마지막 코드를 연주 한 후의 기립 박수와 폭발적인 환호성은 잠시 리스트를 능가하는 스타로 착각하게 해주는 짜릿함을 느끼게까지 해준다. 브람스의 숭고함,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고독과 내면의 사색보다는 피아노 줄을 다 끊어버릴 듯 한 현란한 테크닉과 화려한 장식음들은 물론, 피아노의 가장 낮은 음역대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역대를 거침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초인간적인 기교로 청중들의 귀보다는 휘둥그래진 눈을 자극하는데 더 큰 재주가 있었던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원조였던 것이다.

화려하고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가였던 그의 연주는 언제나 파리 시민 특히 여성을 열광시켰다. 여성 팬들은 그의 연주가 끝나면 장갑과 손수건을 뺏기 위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신조어를 붙여줬다고 한다. 사랑도 원없이 해보고, 명예와 인기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누려본 리스트는 노녁에는 더 높은 곳에 삶의 의미를 두고 성직자가 되려고도 했지만 그의 타고난 바람둥이의 끼는 잠재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중이 고기 맛을 너무 알아버린 듯, 리스트의 종교적인 작품들은 신앙심의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기름지고 넉넉하고 풍부한 소리로 표현되었지만, 사랑을 주제로 40살에 작곡한 `사랑의 꿈(노타메 칸타빌레(베토벤 바이러스의 일본판 삽입곡)`, `탄식`과 같은 작품들은 얼음공주의 가슴도 한방에 스르르 녹여버릴 수 있을만큼 극단적으로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선율들이다.

브람스가 쓸쓸한 10월에 태어났다면 작품들을 남기기도 전 스스로 가을에 취해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곡들을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동시에 리스트는 10월 촉촉한 가을비 내리는 계절에 태어났기에 더 불타오를 수 있었던 열정과 야심이 조금은 가을의 영향을 받았던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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