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깊이와 폭을 넓힌 윤형근의 회고전(2018. 8.4- 12.16)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윤형근(1928-2007)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권과 반공을 거치는 동안 세 번의 복역과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윤형근은 서울대학교 1회 입학생이었지만 국대안 반대운동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되어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시 홍익대학교에 들어갔고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감시와 울분속에 자신의 예술을 토해 내었던 작가이다.

천성적으로 협잡성을 눈뜨고 볼 수가 없고 옳지 못한 것, 정직하지 못한 것을 보면 화가 나고야 마는 이 작가는 청춘을 악몽속에서 지냈다. 그림 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게 된 작가는 색채가 사라진 흑백의 추상작품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었다.

윤형근은 일기에서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 화폭 양쪽에 굵은 막대기처럼 죽 내려 긋는다`라고 적고 있다. 평론가 미셀 누리자니는 `직립한 그림`이라는 평문에서 보도연맹사건으로 죽음을 체험한 윤형근이 `공포를 극복하고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기`라는 말로 윤형근의 작품을 독해했다. 윤형근은 2002년 파리의 장 브롤리 화랑에서 가진 개인전 인터뷰에서 "자신이 1950년대 살아남은 사람이고, 잉여인간 같이 살아가면서 다시는 타락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통해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윤형근은 굴곡진 삶 가운데 고개 숙이거나 침묵하지 않았고 세상을 향해 계속적인 말을 건넸다. 최종태는 "윤형근의 검정에는 삶의 아픔과 고독과 허허로움이 예민하게 스며 있으며, 그의 화면은 왠지 바늘 같은 것으로 찌르면 아픈 소리를 낼 것만 같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던 윤형근의 말은 예술은 결국 인간 내면의 본질을 다루는 것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결국 인간 내면의 얘기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아름다운 것` 임을 그는 `무서운 고비`를 넘기며 체감했다.

윤형근은 수직으로 가르는 검은 기둥, 하늘과 땅을 잇는 우뚝 선 구조를 통해 세계 가운데서 당당한 `굴하지 않은 대결`의 정신을 보여줬다. 또한 내려선 구조를 통해 시공간의 연결성, 천지와 인간의 길에 대한 자각을 작품에 새기며 수수하고 듬직한 인간성을 나타낸 작품이 예술의 품격을 높힐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윤형근은 평상성(平常性)과 무사(無事)의 아름다움이 지고의 아름다움으로 귀착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정심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기백이 그 내면에 자리한다.

미니멀한 조형미와 순수예술성을 구축하고자 했던 70년대 단색화 운동의 계보와 전시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윤형근의 작품은 이제 보다 근본적인 이해와 평가를 시작할 지점에 이르렀다.

류철하(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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