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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이야기] 이 시대에 짓는 저 시대 건축

2018-09-13기사 편집 2018-09-13 08: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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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에 가면 웅장한 현충문이 유난히 눈에 띈다. 기와를 얹은 전통건축물인데 기둥 머리 위에는 복잡한 얼개 구조물이 화려한 장식인 양 거대한 지붕을 받치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고 만져보면 여느 전통건축물과는 달리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에 미색 페인트를 칠했다. 살짝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은 물론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모신 지방의 여러 국립호국원도 마찬가지다. 이뿐 아니다. 대한민국 공공건축물의 상징인 청와대 본관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도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웅장한 콘크리트 한옥'을 공공건축물에 적용되는 하나의 '양식'이라 여길 만 하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공공건축물이 이 '양식'대로 지어졌고 또 지어지고 있다. 이 양식의 기원은 1960-70년대에 걸쳐 시행된 현충사를 비롯한 '민족의 영웅'과 관련된 사적지에 대한 이른바 '성역화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사당과 기념관을 콘크리트로 전통건축양식을 흉내 내어 지었는데 전통목조건축물보다 크게 만들어 웅장함을 과시했다.

현재 경복궁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좀 더 독특하다. 이 건축물은 원래 경복궁에 있던 기존 전각 100여 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립종합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1966-72년 사이에 세워졌다. 새 건물을 지으려고 문화재 격인 고건축물을 철거했으니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되었다. 당시 설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등 온갖 전통건축의 명작을 합쳐 놓았다.

1966년 '국립종합박물관' 건립계획 당시 이 사업을 추진했던 문화재관리국의 지침에서 '콘크리트 한옥'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전통은 민족의 문제이며 계승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전통건축의 명작을 합친 설계안을 지지했다. 이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은 "죽은 고전과 산 전통이 있다. 전통은 끊임없이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면서 옛 건축물의 모양만 본 떤 당시의 설계안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고건축은 그 시대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현재 실용적인 용도로 다시 만드는 것은 넌센스이며 외형과 내부공간 사이의 모순"에 대해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당시 건축가들은 옛것을 적당히 모방하는 것이 곧 전통의 계승이라는 식의 논리가 이후 다른 공공건축물에 미칠 파장에 대해 우려했다. 콘크리트 한옥 공공건축물이 적지 않은 오늘날의 현상을 보면 당시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건축은 지어진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한 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이전 전통사회에서 목조로 된 건축물이 지어지고 발전한 것은 당시에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재료가 나무였기 때문이다. 전통건축물의 모양 또한 목재의 물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물이다. 현대에는 현대에 적합한 건축물이 지어진다. 그래야 쓸모 있는 건축물을 경제적으로 지을 수 있다. 남의 작품을 베낀 것이 명작이 될 수 없듯이 다른 시대 건축물을 흉내 낸 건축물이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없다.

실내에서 주로 전시하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미술품과는 달리 건축물은 대중의 눈에 띄는 공적인 성격이 강해 높이는 물론 모양과 색상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건축물도 이러한데 하물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짓는 공공건축물의 공공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공공건축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므로 대중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통건축을 흉내 낸 웅장한 공공건축물은 시대적 모순으로 인해 쓰임새에 비해 비싸다. 짧게는 백 년 길게는 천 년 이상 진화한 전통을 하루 아침에 베끼는 것으로 계승할 수는 없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우리말과 우리옷을 뒤섞은 뮤직비디오로 미국 빌보드챠트 정상에 두 번째 등극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통은 끊임없이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김수근의 말이 실감난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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