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
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
`국수國手`가 마침내 왔다. 소설가 김성동은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체제로 말미암은 절대고독을 겪으며 한국문학사의 걸작 국수를 27년 만에 완성, 유역이 간직한 `고유성이 보변하다`는 사실을 뚜렷이 밝혔다. 이 책을 만든 편집인도 올여름 무더위까지 뚫고 `글지`(작가)의 거처, 비사란야(非寺蘭若)를 오가며 무진 애썼다. 창작과 출판의 시대적 소명이 그토록 강했던 것일까. 국수가 그린 서민들의 참담한 신세와 헌걸찬 처신과 간절한 염원에 감동했는지, 이제 서민부터 대통령까지 국수의 존재를 실감하고 있다.

국수는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탐관오리들의 학정, 이에 맞서는 인민들의 항쟁"을 다루고 있다. 여타 소설과 달리 국수의 빼어난 점은 이 작품이 조선 시대 겨레말을 내포 유역 토박이말과 `소리체` 글월로 오롯이 되살려 지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고 있는 말글의 적폐를 샅샅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동은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기 싫어 역사에서 밀려난 서민 삶을 그리되 `옛 문헌들과 왕고(王考)를 비롯한 어른들한테서 귀동냥한 말씀` 또는 `5·16쿠데타 이전에 나온 서책`에서 익힌 우리말 진경을 펼쳐놓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탁월한 현실성과 역사성에 깊이 감동할 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언어적 현실의 병통을 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다. `조선어의 발전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추진한 언어정책 영향을 내버려둬 우리가 쓰는 말글은 한·왜·양(漢·倭·洋) 삼독에 찌든 신세가 되었으니, 말을 되살리지 않고서는 그 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민족문화가 올바르게 설 수 없고, 민족문화가 올바르게 서지 못하는 만큼 참된 뜻에서 민족 얼 또는 민족 삶은 있을 수 없다`(국수사전 中)라는 참말이 작품을 읽는 내내 우렛소리로 울린다. 이제 우리에겐 셰익스피어의 영어에 비견할 국수의 우리말이 있다. 올가을에 국수와 함께 역사를 되짚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며 활찐 내포 유역으로 떠나는 여행도 참 알차겠다.

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