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는 기원전 1157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위기간이 5년 정도로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지만 나름 유명세를 치루는 인물이다. 미라에서 발견된 천연두의 흔적 때문이다.

천연두는 지금은 사실상 사멸했지만 수천년 동안 인류사회를 위협해온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다. 반백년 전만 해도 전세계에서 매년 200만명이 죽어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호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다. 작은 피부발진질환(smallpox)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일단 발병하면 마을은 물론이고 국가의 존망까지 흔드는 파괴력을 보였다.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 피웠던 남미 아즈텍 제국은 불과 수백 명의 스페인 군인한테 멸망되고 말았다. 처음 전황은 당연히 수십배의 군대가 많은 아즈텍이 우세했다. 대포와 총과 같은 최신 무기가 있었지만 규모 차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전세를 뒤바꾼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였다. 스페인인들이 옮긴 천연두는 원주민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면역력이 전혀 없던 아즈텍은 국민의 70% 이상이 사망하면서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정복당해 버렸다.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상 최악의 질병에 대한 소멸을 선언했다. 1977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항구도시 메르카에서 23세 천연두 환자가 발견된 이래 3년 동안 발병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인류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3년 전 한 차례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메르스가 또다시 노크를 했다. 이웃나라 중국엔 돼지열병이 창궐했다. 에볼라, 콜레라, 지카 등도 참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전염병은 인구 밀도와 비례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전파 속도가 빨라진다. 지구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서로 다른 지역간 접촉도 빈번해 전염병 창궐의 가능성은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국가가 된 한국은 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설마`하는 방심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늘어난 인구와 세계의 지구촌화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질병 확산을 막거나 완화하는 건 국민 개개인의 안전의식에 달렸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초동 대처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이낙연 총리의 말은 결코 과하지 않다.

이용민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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