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읽기] 내성적인 여행자

가족과 통치
가족과 통치
◇가족과 통치(조은주 지음)=책은 한국 사회에서 `인구` 문제가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관련해서 부상했음을 역사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저자는 십 수 년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1960-1970년대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산아제한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화와 연관된 정상화(normalization) 및 주체화의 과정이었음을 설파해낸다. 또 가족계획사업은 근대적 전업주부와 임금노동자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면서 `정상가족`의 확립을 도모했으며, 이는 우리 현실의 직접적 기원이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족과 여성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룬 당대사, 젠더 이슈의 심층을 파헤치는 분석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접근법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서 등으로 읽히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안목을 제공할 것이다. 창비·376쪽·1만 8000원

◇N.E.W.(김사과 지음)=대기업 오손그룹의 후계자인 정지용은 아버지 정대철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덜 떨어진 자식이라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다. 멀끔하지만 어딘가 의뭉스러운 정지용과 학벌과 미모와 집안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는 그의 아버지 정 회장과 그녀의 어머니 홍 교수의 설계대로 순조롭게 결혼한다. 신혼집은 서울 근교 L시에 오손그룹이 세운, 999대의 CCTV와 첨단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스마트아파트 `메종드레브`다. 메종드레브의 200평짜리 펜트하우스에 사는 정지용은 5평 원룸에 사는 인터넷 BJ 이하나를 로비에서 우연히 맞닥뜨린다. 이하나는 우아한 여왕 같은 최영주와 거울상처럼 대비되는 인물로, 정지용은 매사 반응이 즉각적인 이하나에게 강한 흥미를 보인다. 최영주가 정지용의 아이를 임신할 무렵 이하나와 정지용은 내연 관계가 된다. 외도를 알아챈 최영주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급기야 최영주는 정지용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단체 채팅방을 떠돌아다니는 치정 루머 같은 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인물들이 드러내는 현실이다. 문학과 지성사·288쪽·1만 3000원

◇농부의 어떤 날(민승지 지음)=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이 햇빛을 받고 비로소 반짝거리듯, 우리 주변에도 늘 존재하는, 작지만 특별한 행복이 반짝거리는 순간이 있다. 직접 씨앗을 심고, 땀 흘리며 일하고, 가족과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 가운데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오는 추억이 쌓인다. 그러다 보면 심었던 씨앗이 계절에 따라 성장해 하나의 작물이 된다.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도 마찬가지로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시작 봄, 한창 여름, 수고로운 가을, 쉬어 가는 겨울, 다시 봄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농부 가족이 농사를 지으며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농부 가족이 직접 수확한 농작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자연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소곤소곤 말을 걸어온다. 노란상상·184쪽·1만 6000원

◇어둠이 오기 전에(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정성민 옮김)=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어둠이 삶에 드리워진 순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선댄스영화제 및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서른다섯 살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사이먼 피츠모리스. 신예 예술가로서 막 나래를 펼치려던 어느 날, 그에게 4년이라는 시한부의 시간이 선고된다. 몸이 서서히 굳어 스스로 호흡조차 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희귀질환 MND(운동뉴런증). 절망과 슬픔, 고통과 분노의 나날 속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책은 한 사람의 남편으로,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영화를 사랑하는 예술인으로서, 그리고 누구보다도 삶을 뜨겁게 사랑했던 인간 사이먼 피츠모리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시에 이 책은 움직일 수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스스로 숨 쉬지도 못하는 사이먼 피츠모리스가 동공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술인 `아이게이즈`를 통해 한 글자씩 찍어 내려간 영혼의 필름이기도 하다. 흐름출판·216쪽·1만 2000원

◇내성적인 여행자(정여울 지음)=우리 마음속에 `여행 온도계`가 있어서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고 신호를 보낸다면, 우리는 여행이 선사하는 어떤 순간을 기대하기 때문일까. 베스트셀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의 작가 정여울이 유럽의 36개 도시를 거닐며 보고 느끼고 사랑한 이야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인 작가가 15년 동안 유럽의 곳곳을 자유로이 여행하며 감동의 순간을 포착해 글로 정리한 이 책에는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작가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온 과정이 담겨 있다. 각각의 여행지에서 직접 촬영한 이승원 작가의 사진 66컷이 함께 수록해 독자들이 여행의 감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해냄·392쪽·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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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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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오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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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어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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