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paradox)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는 모순되고 이치에 맞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근거가 타당하거나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을 뜻하는 말이다. 건강 또는 식품 용어 중 프렌치 패러독스와 차이니즈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육류를 많이 먹는 서양인들 중 유독 프랑스인들의 심장병 발병율이 낮은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후자는 거의 매 끼니마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인들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심혈관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 사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두 나라 국민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와인과 양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와인과 양파에는 공통적으로 플라보노이드(flavonoid)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플라보노이드는 노란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플라부스(flavus)에서 유래된 식물색소를 말한다. 플라보노이드는 비타민 P 또는 비타민 C2라고도 하는데, 식품의 기능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기능성물질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실제로 녹차, 와인, 복분자, 양파, 브로콜리 등 몸에 좋다는 음식에는 공통적으로 플라보노이드가 들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생활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플라보노이드는 식물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신비의 건강물질이다. 플라보노이드는 흰색, 빨강, 노랑, 자주 등 변화무쌍한 색깔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각 독특한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 기능성식품의 소재로도 각광 받고 있다. 이처럼 천의 얼굴을 가진 플라보노이드는 그 종류만도 5000여 종이 확인됐다. 이들은 화학구조에 따라 다시 안토시아닌(anthocyanin), 이소플라본(isoflavone), 플라바놀(flavanol), 플라바논(flavanone), 플라본(flavone), 플라보놀(flavonol)의 그룹으로 나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안토시아닌은 꽃이나 열매에 많이 함유돼있다. 체내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그 어느 항산화물질보다 뛰어나다. 안토시아닌은 로돕신이라는 색소의 재합성을 촉진해 시력을 개선시키고 혈관 질환개선 및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검정 콩, 검정 깨, 포도, 자두, 블루베리 등 각종 베리류에 많이 들어 있다. 이소플라본은 특히 여성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만하다. 특히, 중장년 여성의 폐경기 증상 완화, 골다공증, 유방암 예방, 장운동 촉진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석류, 대두, 검정 콩 등이 이소플라본의 공급원이다.

플라바놀은 식물이 외부의 스트레스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물질로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다. 녹차의 카테킨이 플라바놀의 일종이며,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도를 낮추고 노인성 기억력 감퇴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녹차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에 많이 들어 있다. 플라바논은 유독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면 방어작용을 통해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디톡스 효과가 뛰어나다. 또한 인체내 지방축적을 억제하며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감귤, 유자, 오렌지, 레몬 등에 많이 들어있다.

플라본은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염증과 산화스트레스 억제효과가 우수하다. 이중 아피제닌은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 루테올린은 항비만 및 항암효과가 뛰어나다. 사과, 포도, 토마토, 콩, 브로콜리, 양파 등에 많이 함유돼있다. 플라보놀은 안토시아닌의 보조 색소로 안토시아닌과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플라보놀의 일종인 쿼세틴은 심장병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캠페롤은 면역력을 강화하여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항암효과가 뛰어나다. 사과, 배, 포도, 마늘, 양파 등에 풍부하다.

우리가 평소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먹는다면 이처럼 건강에 필수적인 플라보노이드를 우리 몸 안에 충분히 흡수하게 된다. 각 가정에서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를 풍성하게 식탁에 올리고 자연이 내린 플라보노이드의 향연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처럼 기록적인 더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플라보노이드가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는 청량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응본 공주대 겸임교수·전 농촌진흥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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