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서울과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많은 국민들을 눈물 흘리게 했다.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가족과 친지들을 만났다는 의미가 깊었지만 당시 만남이 이뤄진 인원은 65명에 불과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남북한이산가족들은 언젠가 북한에 두고온, 남한으로 내려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버틸 수 있었다. 이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이산가족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 작업이 시작됐고 같은 해 8월 1차 이산가족방문단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었다. 2015년까지 총 20차례에 걸친 이산가족방문단의 상봉이 이뤄졌다. 2005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평양과 서울, 대전, 부산, 광주 등 남쪽 도시들을 화상으로 연결해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이들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전쟁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가족의 비극을 함께 느끼며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잠시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3년만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고 있다. 20일부터 26일까지 1, 2차에 나눠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1차에서는 남측방문단 89명이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만나고, 2차에는 북측 방문단 83명이 남측 이산가족들과 상봉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떨어져 살아야 했던 70년 가까운 세월에 비해 만남의 시간은 2박 3일간 단 11시간에 불과하다. 단체 행사 시간을 기존보다 줄이고 개별상봉 시간을 1시간 늘렸다는 것이 위안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쟁 통에 서로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밤새 눈물을 지새운 세월에 비하면 상봉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까지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시간에 쫓기듯 만나야 하는지 안타깝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일부에서는 남북경협의 효과만을 강조하며 곧 통일이 올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통일에 앞서 고령이 된 이산가족들이 좀 더 자유롭게 남과 북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이번에도 방문단에 선정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9명이 상봉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산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남과 북이 인도적 차원의 해법을 제시하길 기대해본다.

인상준 서울지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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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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