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으로 다른이와 교감하는 아이들

정일규<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정일규<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놀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가? 만일 중·고등학교의 체육 교사가 시험에서 이런 서술 문제를 냈다고 생각해보자.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깔로레아에 나올 법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다. 반대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나 항의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체육의 근본적인 의미나 존재가치에 대한 생각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있다. 또 놀이에 대한 우리 사회일반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도도 들어있다. 즉 놀이는 우리의 의식 속에 `공부`의 반대개념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공부는 매우 바람직하고 칭찬을 받을 만한 행위인 반면 노는 것은 나태하고 비난받을 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사회학자인 호이징아는 이 `놀이(play)`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며,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문화적 소산의 원동력임을 일찍이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규정했다. 즉 인간에게 놀이하고픈 심성이 없다면 오늘날 우리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고 모나리자의 미소와 실용성을 넘어선 아름다운 역사적 건축물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감성을 적시는 비틀즈의 음악과 탄성을 자아내는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놀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전쟁 이후에 경제적으로 급속한 압축성장을 이루면서 `근면과 성실`의 가치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시되었다는 점이다. 근면과 성실은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부지불식간에 그 가치를 위해 쉼과 멈춤, 배려와 나눔과 같은 것은 희생되거나 유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실 그 시대를 관통한 `하면 된다`는 긍정정신과 근면과 성실의 가치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는 권위주의와 연결되면서 갑질문화와 노동착취와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놀이를 죄악시하는 무수히 많은 일중독자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이윤추구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기업에서 성공하여 일정 지위에 오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꼰대 성향`이 자주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는 이유가 된다. 즉 이러한 근면과 성실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실수하는 부하직원이 용납되지 않으며 팀 내 회식에 빠지는 개인주의자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또 하나 놀이에 대한 사회일반의 부정적 인식이 형성된 배경에는 실제로 우리의 일그러진 놀이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기성세대는 학교에서 제대로 `노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다. 빡빡한 직장생활에서 놀이란 그저 일로부터 파생된 문제의 배설구로 여겨진다. 그래서 회사에서 끝나면 대부분 술자리로 이어지고, 원하지 않는 사람까지 의무적으로 참석하여야 하는 자리가 되고 만다. 이런 문화 속에서 놀이의 가치는 대부분 직장일의 연장선에서 팀워크를 다지고 일을 잘하기 위한 부수적인 가치로서만 자리매김 된다.

이러한 인식은 학부모에게도 똑같이 나타나고, 학교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체육은 그 자체로 인간됨을 갖추는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생각되기 보다는 더 공부를 잘하기 위한 `머리를 식히는` 정도의 가치로 인식된다.

서두에 꺼냈던 `놀이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학교교육에서 묻고 대답되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체육의 존재가치는 단순히 `머리를 식히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참된 의미는 평생 동안 가져갈 놀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다른 이와 교감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데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유쾌하고 재미있는 `놀이`이어야 한다.

체육이 놀이가 될 때 아무리 신체적으로 힘든 훈련의 과정이라도 저마다 해방과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되며, 그 가운데 참다운 성숙이 이루어진다. 체육은 지식일변도의 학교교육과정에서 그나마 아이들이 숨을 쉬는 숨구멍이다.

정일규<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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