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07년까지 OECD 국가들 중 1위를 고수하다 2008년에야 멕시코에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한국의 근로시간은 꾸준히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2000시간을 넘기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OECD 최장 근로시간 2위라는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비록 십년 가까이 2위라는 등수를 다른 나라로부터 추월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국가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근로시간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로 평가된다. 2003년 당시 연간 2410시간의 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근로시간 및 휴가제도를 국제기준에 맞추어 근로기준법을 대폭 개정했다.

2003년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또 주 최장 근로시간도 68시간으로 단축했다. 휴가제도도 개선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도 3개월로 확대했다. 당시의 개정 근로기준법의 시행 시기는 업종과 규모에 따라 2004년 7월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됐다. 2004년 7월부터 공기업, 금융·보험 및 100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으며 2005년 7월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 2006년 7월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 2007년 7월에는 50인 이상 사업장, 2008년 7월에는 20인 이상으로 확대되었고, 20인 미만 사업장은 2011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다만 2018년 여전히 한국의 직장인들은 대부분 시간빈곤자들이다. 1인당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 지난 10여년 줄어들긴 했지만, 직장에의 통근시간은 OECD에서 가장 긴 58분으로 OECD 평균 통근시간인 28분의 2배를 넘고 있다. 결국 일단 취업하면 거의 하루의 대부분은 출근 준비, 출근, 직장생활과 퇴근으로 사용하게 되고,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온전한 내 인생을 사는 시간은 매우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유달리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최장의 근로시간에 기인한다고 논의된다.

올해 거의 15년 만에 다시 한 번 근로기준법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 법정 근로시간을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이달 1일부터 이 법은 비록 처벌은 6개월간 유예되었지만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빈곤의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한국 사회,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도 낮은 국가에서 한 발자국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 법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혼자 독립적으로 운영돼 성공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은 별로 없다. 관련 정책들과 조화돼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제도간의 시너지를 통해 정책의 본연의 목적을 보다 잘 달성할 수 있다. 근로시간의 정의와 범위, 연계된 다양한 유연근무제의 도입,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 확대, 업종 실태 분석을 통한 생산성에의 영향 정도와 현실적 적용이 제약되는 경우에 대한 파악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또한 저녁은 있지만 저녁밥이 없는 삶이 될까하는 우려들이 제기됨에 따라 임금체계의 개선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시간이란 형식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업무량 자체도 줄일 여지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비록 현재는 우려와 걱정도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련 제도들의 보완을 통해 근로시간의 단축은 계속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역시 우려 속에서 추진되었던 2003년의 법 개정으로 이제는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주 5일 근무제가 당시 도입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그 이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인식과 문화의 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지만 법이나 제도가 오히려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들이 더 많다. 십여 년 만의 법 개정으로 한국 사회는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자식들이 직장인이 되었을 때에는 프랑스인들처럼 한 달 간 휴가내고 바캉스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황혜신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