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단어로만 뵙던 아버지 찾아 감개무량"

지난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유족과 장병,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사자 고 김재권 일병 유해 안장식`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유족과 장병,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사자 고 김재권 일병 유해 안장식`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실체없이 추상적 단어로만 봬왔던 아버지를 이렇게라도 만나게 돼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68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김성택(68)씨는 한 줌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가슴에 안으며 눈을 감았다.

만삭인 아내를 두고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68년 만에 가로 20cm, 세로 20cm 크기의 유골함에 담긴 채 유해로 아들 곁에 돌아온 고 김재권 일병.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 김 씨에 의해 영면에 들어갔다. 김 일병은 이날 아내인 전옥순 씨와 함께 합장됐다. 김 씨는 "26세에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났던 남편은 62세의 부인을 이제야 만나게 됐고, 어느 덧 어머니보다도 나이를 먹은 68세의 아들은 26세의 아버지를 만났지만 비로소 가족을 모두 만나게 됐다"며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유족과 장병,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사자 고 김재권 일병 유해 안장식`이 열렸다.

안장식은 묵념, 조사 낭독,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등 순으로 최고 예우를 갖춰 진행됐다.

김 씨는 아버지의 안장식을 치르며 "오늘은 아버지를 떠나 보냄이 아닌 만남의 날이고, 슬픔 아닌 반가움의 날"이라며 "이제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만나볼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1924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 일병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두 달 뒤인 8월 자원입대했다. 결혼 2년차였던 당시 아내 전옥순 씨는 임신 중이었다.

김 일병은 당시 아버지가 제주도 목재소 부지를 부대 훈련소로 무상 제공해 입대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나라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임신한 아내를 홀로 둔 채 김 일병은 제주도 훈련소에서 일주일 간 교육을 받고 9월 제 1201공병단으로 전입했다. 김 일병은 아군의 신속한 기동을 지원하는 공병작전에 참가했다 같은 해 10월 15일 경기도 가평에서 북한군 비정규전 세력의 교란활동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일병의 유해는 58년 후인 2008년 경기 가평군 적목리에서 발굴됐다. 전쟁이 끝난 후 피난민들이 논에 방치돼있던 아군 추정 유해 2구를 숯가마에 가매장하는 것을 목격한 마을 주민의 제보를 바탕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주변 발굴에 나선 결과 2구의 유해와 전투화끈 등 유품 9점을 발굴했다. 유해 시료채취와 6·25 전사자 유가족 시료채취로 대조했지만 유족을 찾을 수 없어 지난 10년 간 김 일병은 `이름 없는 유해`로 남았다. 그러다 지난해 김 씨가 유전자 정보를 다시 정부에 제공하면서 극적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한국전쟁 미수습자만 아직도 13만 3000여 위나 된다. 지난 18년 간 발굴된 유해가 국군 전사자만 9550여 위인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21위(1.2%)에 불과하다.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은 조사에서 "육군은 선배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본받아 더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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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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