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놀이, 최적화된 아이 성장 시스템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아이가 세 살 무렵, 하루는 방바닥에 블록을 잔뜩 쏟아놓고 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블록을 한 줄로 높이 쌓아놓고는 엄마를 쳐다보며 `한빛탑` 그랬다. 엄마는 박수를 치며 호들갑스럽게 `잘했네`를 연발했다. 아이도 따라 박수를 치며 덩달아 좋아 했다.

아이의 행동은 전형적인 상징놀이이다. 상징 놀이는 그 무렵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놀이 형태이다. 어떤 사물이나 동작에서 별개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놀이를 하는 것이다. 베개를 안고 동생이라고 어르거나, 인형에게 젖병을 물리면서 놀이를 하는 것도 상징놀이라고 부르는 행동이다. 소꿉놀이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상징놀이를 가장 많이 하는 시기는 두 살부터 네 살 무렵이다. 이 시기는 아이들이 세상과 상호작용을 넓혀가는 시기이다.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나야 하는 불안이 큰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호기심과 불안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놀이인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물건이나 행동을 자신의 욕구와 호기심에 대치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아무 저항 없이 호기심의 대상과 상호작용을 한다.

구 소련의 천재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이 상징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이 정한 규칙에 복종하는 법을 학습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법을 배우며, 자기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고 말한다. 나아가 별개의 의미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사고력이 발달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놀이는 성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생후 2·3개월이 되면 엄마들은 아기가 바라보는 천장 어귀에 모빌을 달아준다. 아기들은 모빌을 따라 눈동자를 돌리면서 혼자 웃고 좋아하기도 한다. 시각이 발달함에 따라 외부 세계의 인식과 그에 대한 호기심이 그런 유쾌한 행동을 유발한다. 조금 더 자라면 입에 젖꼭지를 물고 놀기도 한다. 아기들은 엄마와 분리되는 불안을 젖꼭지 물기를 통해 해소하고, 젖 먹기 행동을 하면서 엄마와의 애착 행동을 이어간다.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놀이로 사회적 역할을 학습학고, 좀 더 성장하면 도구를 사용하는 놀이를 하면서 소근육을 발달시킨다. 조금 더 성장을 하면 고정된 친구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하면서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기도 하고, 사교의 한 방편으로 놀이를 사용하면서 인간관계 기술을 발달시킨다.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서 놀이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에 요구되는 많은 필요를 충족한다. 감각을 발달시키고, 세상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고, 대상의 고유한 의미를 넘어서는 추상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도 놀이로부터 시작한다.

놀이의 가치는 인지적인 성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기쁨을 표현하고,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며, 분노를 삭이고, 좌절을 극복한다. 질투를 투사하고, 슬픔을 해소하는 데도 놀이는 유용한 도구이다.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며, 깊이 있는 심성을 길러가게 되는 것이다.

놀이가 신체적 발달에 유용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치기, 팽이치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비석치기... 단언하건대, 큰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우리 몸의 기능을 섬세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방식에 있어서 놀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놀이는 아이들의 사회성을 발달시키는데도 최적의 시스템이다. 서로 어울려 노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할 줄 알며, 질서를 지키고, 희생도 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카고의 범죄자들을 분석해보니 어렸을 때에 놀이가 결핍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시기 얼마간, 우리 사회가 아이들 곁에서 놀이를 격리시킨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놀이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들여서도 다 할 수 없는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교육적 기능들을 소리 없이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 놀이인 것이다.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한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성장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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