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장에서 앵두를 보는 순간, 기억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어느 문학동인회에 들어갔다. 동인회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립기념일을 맞았고, 기념일 다과상에는 앵두가 놓여 있었다. 그해 6월 10일의 앵두는 유난히 붉었다. 앵두를 볼 때마다 까까머리 남학생과 단발머리 여학생 십 여 명이 둘러앉아 시 합평을 했던 풍경이 스친다.

1970-80년대만 해도 대전지역에는 고등학교 문예부 활동이 왕성했다. 많은 학교에서 문예부를 운영했고 교외 연합동아리들이 여럿 있었다. 이미 1960년 전후부터 정훈 시인이 이끌던 머들령문학동인회, 연극인 김성수 선생이 만든 돌샘문학동인회 등이 활동한 것을 보더라도 청소년들이 참여한 문학회의 역사는 깊다. 이밖에도 동맥, 파랑돌 등의 동인회에는 문학적 감수성이 짙은 학생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대학 국문과나 인문대에 다니던 선배들이 고등학교 후배들의 습작을 지도했다. 학생동인들은 현대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이름을 선배들을 통해 들었다. 학교 국어시간에 배울 수 없는 문학수업은 대부분 합평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문학회는 가을이면 문학의 밤을 했고 해마다 동인지를 발간했다. 가톨릭문화회관은 문학의 밤이 열리던 단골 무대였고, 가을날 토요일 밤이 되면 문학을 좋아했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태극당, 청자당, 봉봉제과에서는 남녀 학생동인들이 수줍은 대화를 자주 나누곤 했다. 때로는 남녀 간의 교제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유명 시인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맘모스 빵과 함께 접시에 오르곤 했다.

고등학생 문예부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입시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면서 부터이다. 작가지망생이 아니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사유와 성찰의 중요한 과정이다. 글의 행간에서 잠시 삶을 반추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와 다른 시선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훈련을 위해서 학교 문예부나 독서모임은 더욱 활발해 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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