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정부개헌안이 `투표 불성립` 선언된 것은 예견된 사태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 114명이 투표에 참여했지만 의결정족수인 192명에 턱 없이 부족해 표결 절차를 밟는 의미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로써 본회의 개의 후 1시간여 만에 대통령 개헌안은 무용지물이 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이 사태를 두고 여당·청와대 대(對) 야권으로 갈라져 서로 책임전가식 비난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지 그 `오만과 독선`이 오십보백보로 여겨진다.

정부개헌안이 실효된 마당이면 여야, 청와대를 불문하고 국민들에게 머리부터 숙이는 게 사리에 닿는 처신일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이를 기화로 서로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파열음을 내는 등 갈등 국면을 증폭시키고 있다. 매사 편향된 시각으로 보면 자기들만 옳은 것처럼 강변하기 십상인 법인데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야당의 표결 불참에 유감"이라는 청와대나, "야당은 호헌세력임을 증명했다"는 여당이나, "표결처리쇼는 협치 포기"라는 한국당이나 모두가 공허해 보일뿐더러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소리들임을 국민은 모르지 않는다. 결국 일이 꼬여버린 근본 원인은 개헌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가 각자 놀았기 때문이며, 이런 식이면 국민개헌 약속은 갈수록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며 "국회개헌안을 내놓고 국민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 의장의 이런 재촉이 맞는 말이긴 하나 쉽지 않은 현실이다. 권력구조 문제 하나만 해도 여전히 동상이몽 형국인 판이어서 여야 합의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선다.

이제 개헌 관련 공은 전적으로 국회로 넘어왔고 그만큼 책무가 무거워졌다. 요란하게 공수표만 남발하는 것에 대해 국민은 식상하고 피로감 또한 적지 않다. 30년 묵은 개헌 숙제를 풀려면 진영논리 장벽부터 허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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