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일종의 기억을 되짚으며 시작 한다. 매일 아침 나서는 집, 그리고 일터로 떠나는 길, 이내 마주 치는 바깥의 온도,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매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속에 각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리, 그들로 붐비는 구획된 공간, 건축물들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이다.

며칠 전 서울에 사는 미술가친구가 처음 대전에 놀러왔다. 친구는 처음 방문한 대전역 주변 풍경이 매우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하루 종일 강한 자석에 이끌리듯 본 소제동, 중동, 은행동, 대흥동의 풍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오래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데, 그것이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녹아들어있었다." 이것은 뜻밖에 장소에서 오래된 맛집을 발견하고 묘한 매력과 관심이 생겨 계속 찾게 되는 현상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대전역 주위는 얼핏 보면 현대적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50년은 훌쩍 넘은 건물들과 그사이에 보이는 새 건물들, 저 멀리 보이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옛 충남도청 등이 어우러져 처음 방문한 친구에겐 인상적인 도시풍경으로 기억되기 충분했다.

소제동 재개발 풍경과 일상의 흔적을 통해 창작의 매개체가 된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는 자신이 인상 깊었던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약 3년 전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기억하는데 `사라지기 쉬운 현수막`이라는 최영환 작가의 영상 작품이었다. 2012·2013년 서울 성북동 재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의 `개인사` 인터뷰와 `내 집의 의미`를 작은 거울 설치물에 태양을 반사해 생성된 빛의 글씨로 보여준 작품이다. 그곳의 풍경과 상황, 사라지는 세월을 설치한 빛의 글씨로 현수막의 문구처럼 표현한 작가의 시각과 해석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재개발로 비롯된 사회적 갈등이 공동체 내부의 갈등만 초래한 것이 아니며 그간 돌이켜 보지 못한 익숙한 공간속에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가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 현대와 과거가 어우러진 원도심에서 문화, 예술의 진정성 있는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소중한 도시의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백요섭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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