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양정모 선수와 오이도프의 얼굴이 들어있는 동그란 딱지를 가지고 놀았다. 구슬치기를 하며 강약의 조절을 배웠다. 이 모든 놀이가 이뤄진 장소는 골목이다. 언젠가부터 유년의 골목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기억의 저편도 희미해졌다.

지난달 대전 동구 소제창작촌이 있는 골목 담장에 그림 몇 점이 걸렸다. `시와 그림이 있는 골목`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내 발길을 이끈 것은 시와 그림보다는 좁은 골목이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이 길을 다녔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여기에서도 놀이는 이뤄졌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 골목에 퍼졌을 테고, 술 취한 아버지가 삶의 무게를 지고 비틀비틀 걸어오던 곳도 이곳 이었을 것이다.

작은 액자에 담긴 일러스트 소재는 대전 사람들에게는 친숙하다. 30년 넘게 두부두루치기의 맛을 지켜온 가게, 육개장 하나로 쓰린 속으로 달래주던 식당, 1960년대 문을 연 이발소, 낯익은 국밥집 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잠시 시간은 멈추고, 기억은 순식간에 소환된다.

길가에서 소제창작촌까지 들어가는 골목은 매우 짧다. 그림도 많지 않다. 무심코 걷다보면 작품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들은 침묵의 공간이 된, 잠들어 있는, 인적 없는 골목을 깨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는 12일 토요일 오후에는 소제창작촌이 있는 골목에서 마을축제와 주민노래한마당이 열린다. 창작촌에 입주한 레지던시 작가들의 오픈 아틀리에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골목 안에는 100년이 된 솔랑산 우물터가 있다. 40여 년 전, 우물이 메워지면서 우물가로 모여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다. 떠난 이들이 그리워, 사라진 발자국을 듣고 싶어, 과거의 현재를 떠올리고 싶어 소제창작촌 운영진은 골목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소제동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골목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는 누구라면, 대전역 뒤편에 있는 시울 2길 골목에 들어서도 좋을 일이다.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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