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 유명한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의 목화를 불법적으로 국내에 들여온 것은 사실이 아니며(2017년 12월3일자), 이 목화가 일본까지 전래돼 도요타자동차 탄생의 씨앗이 됐다는 이야기도(4월 3일자)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목화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화장품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거대 화장품회사 시세이도의 실패담이다.

시세이도는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에 자생하는 생강의 일종인 `자무(jamu)`에서 추출한 원료를 이용해 화장품을 개발한다. 브랜드명 `UV White`로 미백, 노화방지 기능성 화장품으로 영국, 일본 등에 51건의 자무 추출물 관련 특허를 출원한다. 그런데 자무는 1000여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왕실과 민간에서 여인들의 화장품으로 사용돼온 식물이다. 미백 및 피부 노화방지 기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왔다. 오랜 세월 약재로 사용해온 인도네시아 농가들은 갑자기 외국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위기에 처하자, 2001년 환경 NGO 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오히려 토착민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시세이도가 생물해적이라고 거세게 비난하며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기 시작한다. 이에 자사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시세이도는 2002년 특허를 자진 철회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시세이도는 막대한 손실을 각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사의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 것이 전부일까 왜 그랬을까. 우리는 그 원인을 추적해 가다보면 생생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일본의 화장품회사인 시세이도는 외국인 인도네시아의 식물을 가져다 이용한 점이다. 자국의 식물자원을 이용했다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시세이도가 외국자원을 이용한 시기가 1990년대 말이다.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1992년)된 이후이다. 전 세계가 합의한 생물다양성협약의 중요한 내용은 생물자원에 대한 관할권 국가의 주권을 인정한 것이다. 석유나 철광석과 같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국가에 그 소유권이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전까지는 지구상의 생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1992년 이후부터는 외국 생물을 취득하려면 해당국의 승인이 필요해진 것이다. 즉 일본회사 시세이도는 외국 식물인 자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승인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시세이도는 당시 그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해당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2002년 특허를 자진 철회하지 않았다면 시세이도는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생물다양성협약`보다 더 세부적이고 엄격한 국제규정이 10여 년의 논의 끝에 8년 후 제정되기 때문이다. 바로 `나고야의정서`라는 국제협약이다.

이 나고야의정서에 따르면 외국의 생물을 수입하려면 해당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 자원을 활용해 얻은 이익을 해당 국가에 일정부분 나누어줘야 한다. 따라서 이 체제에서는 원가상승, 로열티 지급 등으로 인해 생물을 이용하는 측에서는 추가 부담이 당연히 따르게 된다. 즉, 생물자원 수입국은 부담이 가중되는 반면, 수출국은 그 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생물자원은 의약품, 식품, 화장품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바이오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는데, 우리나라는 약 67%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에 따른 피해액이 수백 억 원에서 수조원 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화장품들을 보면 자무를 이용했다고 하는 제품이 흔히 눈에 띈다. 특히 여성세정용 제품들은 경쟁적으로 자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인도네시아로부터 적법하게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지 회사의 자가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왜냐면 이제는 외국의 생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계속 자유롭게 사용할 경우 국제소송이 코앞에 닥쳐올 세상이고, 앞서 보았던 시세이도의 피해사례를 되풀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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