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의 시네마수프]세번째 살인-고레에다 히로가즈 감독

영화는 살인으로 시작됩니다. 어둑한 강가를 걷던 중년의 남자는 앞을 걸어가는 다른 중년의 남자를 갑자기 둔기로 칩니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남자를 계속해서 내려칩니다. 강가에 꽤나 큰 불길이 일어 오르고 있습니다. 남자는 살해한 시신을 불에 태우며 얼굴에 튄 핏자국을 문지릅니다.

변호사 시게모리는 동료 변호사의 부탁으로 미스미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시게모리는 과거 미스미의 첫 살인사건의 판결을 내렸던 판사의 아들이라는 묘한 인연으로 얽힌 관계입니다. 이번에는 그 판사의 아들이 다시 미스미의 변호사가 됩니다.

미스미는 이미 살인을 자백을 한 상태입니다. 시게모리는 다만 강도 살인으로 미스미에게 사형이 구형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변호 전략입니다. 우발적 살인 후 강도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주장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미스미는 시게모리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본인 진술의 세부내용에 대해 헷갈려 하면서 어딘가 불안한 구석을 보입니다. 급기야 변호사 없이 진행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부인으로부터 살인을 사주 받았고 그 착수금이 입금된 내역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스미가 말하는 피해자의 부인의 사주로 저지른 살인이라는 주장을 믿는다기보다는, 또 다른 의혹의 제기가 미스미의 사형 선고가 쉽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전략에서 시게모리는 미스미의 주장을 법정에서도 이어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미스미와 피해자 아내의 관계에 대해 알아볼수록 아내가 아닌 피해자의 딸 사키에와의 관계가 물위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사키에가 피해자 즉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미스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키에는 그러한 미스미의 사정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서 아버지의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나섭니다.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인간이 한 짓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미스미의 첫 번째 살인의 잔혹성과, 당시 미스미를 조사했던 형사의 당시 개인적 원한이나 증오 없이 살인을 저지른, 텅 빈 그릇처럼 보이던 미스미가 더욱 섬뜩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시게모리는 미스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미스미가 첫 번째 살인으로 형을 마치고 출소하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낸 엽서를 통해 미스미가 사키에에게 자신의 친딸에게 주지 못했던 애정을 주고 있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스미는 사키에를 대신해서 그녀의 아버지를 심판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미스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주장을 번복합니다. 이번에는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고 검사의 강압과 전 변호사의 사형만은 피하게 해준다는 말에 거짓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 번을 번복되어진 미스미의 주장은 그 신빙성을 잃어가고 주면에서는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시게모리는 법정에서 미스미의 주장대로 무죄를 주장합니다. 무죄 주장에 있어서는 사키에의 증언이 불리하게 작동 될 것이므로 사키에의 증언을 만류합니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끝까지 사키에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까지 무죄 주장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시게모리는 그것은 진실은 아니지만 그랬더라면 정말 멋진 이야기라고 답합니다. 순간 시게모리는 미스미는 단지 빈 그릇과 같은 살인마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라면, 우리가 보편적 이성이나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공간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부적격자로 탈락되어 이 사회에서 존재하기를 멈추어야 하는가의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 `세번째 살인`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세 번째 살인은 미스미가 나름의 숭고한 이유로 자신의 목숨에 대해 행사한 살인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부적응자를 사형이라는 제도를 통해 그 존재를 처단한다는 살인을 뜻하는 것일까요?

영화`<데드맨 워킹` 의 숀 팬, `오아시스`의 설경구가 놀랍게 그려냈던 인간으로서 가장 가여운 모습의 사회 부적격자들. 일본 영화의 주요작품들을 꼽아본다면 이 배우가 여러 차례 등장하게 되는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세계적인 배우 야쿠쇼 코지가 또 다시 하나의 방점을 찍습니다. 차가운 사유의 연기를 보여주는 후쿠야마 마사하루와도 야쿠쇼 코지와의 연기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꽤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줍니다. 상당히 다른 두 연기 스타일이 이질감 없이 융화되는 장면들 속에서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능수능란한 감독의 기량이 짐작되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섬세하게 짜여진 대본과 정갈하고도 정확한 연출이 다시 한 번 빛나는 작품입니다. 이현진 극동대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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