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대전시향

지난 5일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대전시향 무대는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을 꽉 채운 무게감을 훌쩍 뛰어넘는 깊이 있는 음악의 향연이었다. 작곡가 안성혁의 묵직한 교향시를 서곡으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의 위용이 손정범의 탁월한 기량으로 강렬하게 다가왔으며, 브람스 교향곡 2번 해석 역시 정통 클래식음악이 지닌 진지함을 온전히 표출했기 때문이다.

안성혁의 교향시 `태초의 빛`은 거대한 굉음이 분출하는 강력한 첫 울림을 시작으로 생성과 침묵의 우주 탄생 순간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에너지가 폭발하듯 역동적인 타악기 울림과 지속적으로 흐르는 현의 찰진 소리결에서 마치 빛이 끝없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전통과 현대적인 작곡기법을 작곡가가 생각하는 태초의 개념에 조화롭게 적용해 음으로 시를 그린다는 본래의 교향시 장르에 충실한 수작이다.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들려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는 여느 황제와 분명 달랐다. 탄탄한 테크닉과 단단한 타건은 손정범의 음악적 성장을 받치는 든든한 자산이다. 황제가 등장하듯 강렬한 힘을 바탕으로 곧바로 관객을 압도한 기량은 3악장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때로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음악적으로 섬세한 노래가 지나치게 느려져 반주와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연주자의 독특한 해석은 손정범만의 황제를 보여주는 데 거리낌 없었다. 앞으로 세련된 음색과 예리한 감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주목받는 대표적인 연주자로 설 것이다.

후반부에서 지휘자 제임스 저드가 만든 브람스 교향곡 2번은 기존 브람스 음악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면에 충실한 연주였다. 현과 관의 조화는 무리없이 어울렸고 브람스 음악 특유의 현의 흐름이 가볍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렀다. 중량감 있는 브람스 음악에 내재된 특성이 온전히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은 낭만시기 고전적 성향을 지닌 작품에 대한 대전시향 연주력의 내공이 만만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결과적으로 안성혁의 교향시, 손정범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대전시향의 브람스 교향곡 연주에는 심오함 속에 자신만의 의지를 담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또한 한 무대에서 대전출신 작곡가와 피아니스트, 교향악단의 진가를 알린 기회의 장이었다는 데 이번 연주회의 의의가 있다. 대전시향의 축적된 역량 위에서 더 많은 대전의 뛰어난 작곡가와 연주가가 함께 무대에 서는 청사진을 그려본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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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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