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13일에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언론에서는 선거와 관련하여 정당의 입장이나 후보자 출마여부, 전략공천 등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편 일부 언론에서는 여·야가 정쟁에만 치우쳐 정책대결을 하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내고 있다. 양측이 국민의 목소리를 수용하려는 자세는 취하지도 않은 채, 서로에 대한 비방이나 날선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매니페스토(정책선거)가 실종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매니페스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는 1834년 영국의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이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다. 라틴어의 `손(manus)`과 `치다, 빠르게 움직이다(fendere)`의 합성어로 약속이행을 다짐할 때의 선언, 서약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후보자가 당선되었을 때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사업의 목적, 착수 우선순위와 완성시기, 예산 확보방법 등 구체적인 공약을 개발해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유권자들은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후보자를 선택하며, 당선 후 공약으로 제시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980년대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꽃 피운 매니페스토는 18년간 야당에 머물던 토니 블레어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반드시 실현가능한 사항들을 제시하면서 필요한 재원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확보방안을 밝혔으며, 공개평가를 통해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집권 후에는 공약이행을 위해 정치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영국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 일본에서는 2003년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한 정치신인들이 많이 당선됐으며, 검증과 평가작업을 동반한 새로운 매니페스토가 정착되면서 생활문화의 틀마저 바뀌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또한 2006년에 치러진 5·31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5·31 지방선거에서 참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많이 당선돼 유권자들은 매니페스토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됐으며 후보자 본인 또한 스스로가 잘 알지 못하는 공약, 실천 불가능한 공약 등으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정치권의 주도로 매니페스토가 정착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면서 일정한 한계에 부딪치게 됐다. 매니페스토가 정착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정치권의 후보자들이 정치적 철학과 정책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입증해 보여야 한다. 정치철학이 분명히 제시되고 이에 따른 정책의 구체적 실현 가능성을 주장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을 위해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스스로 책임을 감당할 비전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둘째 국민들의 대표자 선출에 대한 기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후보자들의 학연, 혈연, 지연 등에 의존해 투표해왔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과 사례를 검토하고, 합리적이며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국민들의 관심으로 명확한 정책,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한 후보자에게 투표했다면 그 후 당선이 되었을 때 당선자가 제시한 공약을 실제로 실천하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이 마지막 과정이 생략된다면 앞에서 언급한 방안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매니페스토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책으로 경쟁하고, 정책을 보고 선택하는 선거문화 정착은 후보자와 유권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 달려있다. 이번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어떤 사고와 정책을 갖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투표한다면 매니페스토 정착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정치가 한발짝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영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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